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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尹정부 황태자 떠오른 한동훈 처신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04.24 15:03

에너지경제 구동본(에너지환경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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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이상민 전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과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새 정부 국정운영의 양 날개를 폈다. 윤석열 당선인은 새 정부 초대 내각 인선에서 이 전 부위원장을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 한 부원장을 법무장관 후보로 각각 발탁했다. 이 후보자는 판사출신, 한 후보자는 검사출신으로 각각 경찰청과 검찰청을 외청으로 둔 정부부처 수장 후보자로 지명한 것이다.

행정부 내 주요 권력기관인 경찰청과 검찰청은 국가 최고 권력자 대통령의 권력행사를 돕는 손과 발이고 눈과 귀다. 두 기관의 힘은 그만큼 세다. 이른바‘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논란으로 나라 전체가 온통 시끄러웠던 것도 검찰의 과도한 권력에서 비롯됐다.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 시절 당시 추미애 법무장관에 "총장은 장관 부하가 아니다"라고까지 한 것만 봐도 검찰의 힘을 알 수 있다. 검·경 두 청장은 모두 외청 기관장이지만 각각 장관급·차관급이다.

두 기관을 지휘·감독하는 부처 장관의 힘은 더 말할 게 없다. 윤 당선인이 그런 두 부처 장관 후보자로 가장 믿을 만한 사람들을 낙점했다. 윤 당선인이 새 정부에서 두 사람을 통해 보여줄 국정 장악력을 예단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윤 당선인이 당선 직후 자신 있게 대통령실 민정수석과 사정기능을 없애겠다고 한 것도 바로 이처럼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윤 당선인과의 두 사람 인연으로 보면 이 후보자는 동지자, 한 후보자는 동업자 관계이다. 윤 당선인이 사적인 자리에서 "상민아" "동훈아"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주 가깝고 편하다는 뜻이다.

이 후보자는 윤 당선인의 충암고 4년 후배로 오래 전부터 윤 당선인으로부터 각별한 인간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윤 당선인이 이 후보자에 신세를 졌거나 앞으로 진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전 법무장관에 했던 그 ‘마음의 빚’ 표현을 떠올릴 법한 관계다.

이에 비해 한 후보자는 윤 당선인과 일로 인연을 맺었다. 그냥 사무적인 관계란 뜻이다. 비록 서울대 법대 13년, 사법연수원 기수 4기 후배지만 나이 차이 등을 고려하면 막 터놓고 지낼 사이는 아닐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는 후보자 지명을 받고 인사하는 자리에서 윤 당선인과 ‘맹종관계’가 아니라고 얘기했다. 당당하고 거침없는 태도다.

그러나 사실 한 후보자는 윤 당선인과 남다른 동업자 관계다. 한 때 ‘재계 저승사자’란 별명을 얻었던 그는 윤 당선인과 여러 차례 ‘거사’를 함께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비리 수사를 통해 두 전직 대통령 구속을 이끌어냈다. 문재인 정부의 유력 차기주자였던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 비리 수사에서도 손발을 맞췄다. 당시 조 전 장관은 검찰을 지휘·감독하는 현직 법무장관이었다.

그러나 한 후보자는 이에 개의치 않고 윤석열 검찰총장 체제의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서 수사를 밀어붙였다. 이를 놓고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들이 댄 정의로운 검사’, ‘권력욕에 사로잡힌 정치검사이자 검찰 쿠데타 주역’ 등 엇갈린 평가가 나왔다.

그런 한 후보자 기용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철통보안 속에서 사실상 유일한 깜짝 발탁일 뿐만 아니라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의외성에 있다. 윤 당선인이 후보시절 그를 두고 "정권의 피해를 보고 거의 독립운동처럼 (수사)해온 사람"이라고 했다. 또 "(그가) 서울중앙지검장이 되면 안 된다는 얘기는 일제 독립운동가가 정부 중요 직책을 가면 일본이 싫어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논리"라고까지 했다.

많은 사람들이 새 정부에서 그의 중용을 예견했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사실 서울중앙지검장 시키기도 쉽지 않을 것이란 견해가 우세했다. 정치보복 프레임 속에서 ‘조선 제일의 칼잡이’라는 그를 주요 사건 수사의 사령탑으로 임명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 탓이다. 하지만 윤 당선인은 결국 한 후보자를 법무행정 최고 지휘·감독자 후보 자리에 앉혔다.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우선 검찰 출신 법무장관 발탁의 관례를 깼다. 검사는 통상 지검장-고검장-검찰총장 등 승진코스를 거쳐 법무장관에 오른다. 그러나 지검장급이었던 한 후보자는 고검장-총장 등 두 단계나 건너뛰어 지명됐다. 직급 파괴다. 지검장과 고검장이 모두 차관급 예우를 받지만 지검장 출신 법무장관은 그간 사례를 찾기 어렵다.

한 후보자가 윤석열 정부 초대 내각에서 발탁 인사로 이종섭 국방장관 후보자와 함께 주목받은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이 후보자도 18년 만의 3성 장군(중장) 출신 국방장관 지명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국방장관엔 그간 대체로 예비역 4성 장군(대장)이 기용됐다.

직급 파괴 못지않게 기수파괴도 관심사였다. 사법연수원 기수는 검찰 내 서열화의 오랜 기준이었다. 이 기수로 따지면 아직 검찰 내에 선배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지난 22일 검찰총장과 고검장급 8명 등 검찰 지휘부가 줄줄이 직을 던져 총사퇴했다. 연수원 기수 기준 그의 선배들이 국회 인사 청문회를 앞두고 때 맞춰 물러나겠다고 한 것이다. 검수완박 입법 추진 파동이 배경이다. 한 후보자로선 청문회를 통과해 장관에 공식 임명될 경우 검찰 지휘·감독의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

한 후보자 발탁과정은 검찰에서 기수·직급 파괴를 거듭해온 윤 당선인의 승진 코스를 닮았다. 윤 당선인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불과 열흘 만에 검찰 핵심 요직인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됐다. 문 대통령은 당초 고검장급이었던 서울중앙지검을 지검장급 기관으로 격을 낮추고 윤 당선인을 검사장으로 승진시켜 그 자리에 파격 기용한 것이다. 당시 검찰 내 직급과 기수가 낮았던 윤 당선인을 고위직으로 앉히기 위해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에 올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 임기제가 도입된 1988년 이후 고검장을 거치지 않은 첫 검찰총장이었다.

한 후보자는 윤 당선인의 능력·실력 중시 인사원칙에 부합한다. 줄곧 엘리트 검사 코스를 밟아왔다. 청와대(민정비서관실 선임행정관), 법무부(법무실·검찰국 검사), 대검(정책기획과장·부패범죄특별수사단 팀장), 서울중앙지검(공정거래조사부장·제3차장)에서 두루 근무한 뒤 윤석열 검찰총장 때 최연소 검사장으로 승진,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등을 맡았다.

한 후보자는 머리가 명석한 것 같다. 한 눈에 문장 다섯 줄 씩을 읽는 천재적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한 눈에 한 문장 읽는 것도 쉽지 않은 것에 비하면 비범하다.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 소년 등과했다. 미국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컬럼비아대 로스쿨 유학을 통해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도 땄다.

한 후보자에 대한 세간의 ‘윤석열 정부 황태자’ 평은 그냥 나온 얘기가 아니다. 인사 청문회 등 전쟁의 시작 종이 아직 울리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에 대해 여기저기서 총을 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한 후보자를 윤 당선인의 ‘호위무사’라며 그에 대한 청문회 보이콧 움직임을 보이거나 그를 최우선 데스노트(낙마 리스트)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한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에서 윤 당선인과 운명 공동체의 길을 걸었다. 전 정권 수사 땐 인기를 얻는 듯 했지만 조국 전 장관 수사를 계기로 핍박이 거듭됐다. 좌천 만 4차례나 겪었다.

조 전 장관 ‘먼지털이 수사’ 외 그의 좌천 사유를 딱히 찾을 수 없다. 그런 수사는 검찰 시스템의 문제이고 그 책임은 그간 검찰을 이용해 분탕질한 권력이나 검찰 지휘자들에 물어야 한다. 한 후보자는 먼지털이 수사가 가능하도록 시스템화한 검찰 조직에서 유능한 능력을 보여줬을 뿐이다. 살아있는 권력 눈치 보며 정치적 고려로 수사했다면 반대편에서 정치 검사로 낙인 찍혔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미운털이 박혀 괘씸죄로 조리돌림 당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적어도 민주당은 더 이상 정치보복이란 말을 입에 올릴 자격이 없다.

한 후보자로선 억울할 수 있다. 벼락출세가 보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안타깝고 아쉽다. 그의 언사를 들으면 한이 맺혀 있는 것 같다. 절대 다수 국회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 추진에 ‘야반도주’라고 비판한 게 대표적이다. 사이다 발언은 응어리진 한을 다소나마 풀 수 있다.

하지만 다가오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협조를 얻어야 하는 장관 후보자의 말로는 부적절하다. 아무리 본인이 깨끗하고 당당하게 살아왔더라도 바람직하지 못한 표현이다. 새 정부 출범에 부담만 안겨줄 뿐이다. 민주당이 한 후보자 청문회를 넘어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까지 막을 수 있다고 공공연히 밝히지 않는가. 국회 권력의 힘은 결코 작지 않다. 이미 검수완박 정국에서 확인됐다.

자신을 위해서도 불행이다. 한을 가지고 살면 말과 행동이 거칠어진다. 그 대가가 어떤 지는 그간 우리가 많이 보아왔다. 진보 정권의 실세였고 그의 수사로 피해를 봤던 누구처럼 한을 품고 살면 갈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든다. 파멸의 길을 갈 뿐이다.

정치영역은 검찰사회와 다르다. 검사는 피해자와 범죄자를 가려 범죄자를 벌주면 된다. 단죄도 칼로 베듯이 하는 것이다. 정의 실현이 소명인 검사에겐 법과 원칙이 최우선이다. 경직되고 고지식할 수 있다.

반면 정치는 여러 이해관계자를 아우르고 설득·타협·조정의 마술을 펼치는 세계다. 그래서 정치인의 중요 덕목은 포용성과 유연성이다. 정치와 검찰은 기본적으로 다른 세상이다. 한 후보자는 정무직 내각에 들어가면 정치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검찰 때와 언행·태도·자세를 달리해야 한다. 정치를 하면서 칼잡이 마인드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도 용기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함, 적대적인 사람도 끌어안을 수 있는 따뜻함이 그에게 필요한 것이다.

한 후보는 선배이자 임명권자인 윤 당선인을 본 받으면 된다. 윤 당선인은 먼저 정치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정치를 사실상 우습게 봤다. 처음엔 검사생활 경험만으로 마치 세상 이치 다 아는 듯이 말했다. 그런 윤 당선인도 이제 달라지고 있다. 스스로 "많이 배웠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 인사권자의 뜻도 존중했으면 한다. 한 후보자 지명 발표 직후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칼을 거두고 펜을 쥐어준 것"이라고 밝혔다. 이게 진짜 지명 배경이라면 한 후보자는 당장 청문회 이전부터 그 의미를 잘 새겨야 한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 한 후보자의 앞길엔 걸려 넘어질 돌부리들이 많을 것이다. 그 때마다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탄탄대로는 아닐지언정 비교적 안전한 길을 가는데 겸손 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검사스럽다"는 검사 출신 인사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다. "검사만 유능하고 잘났다"는 착각과 오만, "검사만 정의 실현에 앞장선다"는 독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 후보자와 악연으로 천적관계에 있는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정치 데뷔 때 "옳은 말을 싸가지 없이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요즘 한 후보자에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후보자는 왜 그런지 스스로를 잘 되돌아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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