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해 말 서울 중구 충정로에서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2022년 검은 호랑이의 해인 임인년은 우리나라 경제, 정치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대선을 비롯해 한미 금리인상, 가계부채 규제 등 각종 대내외적인 이슈로 인해 국내 경제에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권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은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은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금융 산업이 호랑이처럼 강해지기 위해서는 감독체계 개편 등 뼈를 깎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윤 전 원장은 금융감독체계를 개편하며 역량을 강화하고, 비효율적 금융 규제는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에너지경제신문은 임인년 새해를 맞아 윤 전 원장으로부터 금융산업 발전 방향 등에 대해 듣고, 이를 두 편에 나눠서 싣는다 <편집자주>
다음은 윤 전 원장과 일문일답.
"금융 양극화 심화, 좌시하면 시스템리스크 전이"
―2022년은 대선, 글로벌 금리인상, 가계부채 해소 등 각종 이슈와 과제들이 산적해있다. 올해 금융시장의 위험요소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 잘 아시다시피 올해 금융시장에는 구조적 불확실성이 넘쳐난다. 금리상승 추세 속 가계부채 부담과 부동산 시장 불안정,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지속에 따른 경기위축, 디지털 전환에 따른 빅테크 진입, 양극화 심화, 글로벌 경제의 인플레이션 등이 국내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새해 금융정책은 딜레마에 처해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시중에 풀린 풍부한 유동성이 주택과 주식투기 등 비생산적인 분야로 몰려와 자산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반면에 실물경제는 위축되고, 가계부채는 급증했으며,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부족한 상황이다. 결국 가계부채에 대해서는 긴축적인 정책을 유지하고, 자영업자 등 코로나19 피해계층에 대해서는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는 이원적 접근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이 가운데 ‘금융의 양극화’ 및 금융의 역할에 주목하게 된다.
―금융의 양극화가 생소한 용어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 금융의 역량과 자원이 사회의 다양한 계층에 불평등하게 배분되는 것을 표현했다. 시중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이 부자에게는 저금리를, 취약계층에는 고금리를 적용함으로써 금융이 사회의 양극화 해소에 기여하기보다 오히려 이를 부추기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장에서 금융사들이 ‘양화를 보유하고 악화를 버리는’ 방식으로 고신용자는 서비스하고 저신용자는 할당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금융의 문제를 사회로, 재정으로 떠넘기는 결과를 초래한다. 은행은 우수인력과 정보에도 불구하고 신용분석 등 큰 노력 없이 비우량고객을 버리고, 우량 고객만을 대상으로 담보를 챙기면서 손쉽게 돈을 벌고 있다. 반면 정부로부터의 혜택이나 금융역량 등에서 열세인 제2금융권은 높은 조달비용으로 인해 은행권에서 할당된 저신용고객에게 높은 금리를 부과하게 된다. 게다가 나머지 고객들은 비은행에서조차 외면 받는다. 여기서 은행은 우량고객, 비은행은 다음 우량고객, 그리고 나머지는 금융혜택이 할당돼 정부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상을 금융의 양극화로 표현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금융사에 바라는 역할은 자영업자, 일부 중소기업 등 그간 자금에 목말랐던 소외된 계층의 갈증을 조금이라도 더 해소해달라는 것이다. 금융이 얼마나 이런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한국경제의 대기업 의존도는 물론 시스템리스크가 줄어들고, 양극화가 완화되면서 국가 재정 부담도 작아질 것이다. 새해에는 금융사들의 금융 양극화 해소 노력이 더 활발해졌으면 좋겠다.
"가계부채 규제 과도하지 않다...금융의 본질 생각해야"
―2022년 대선과 관련해 금융정책은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나.
▲ 시중에 풀린 과잉 유동성으로 인해 가계부채 증가세가 지속되면서 대출규제는 총량관리,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포함해 전반적으로 강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선거가 끝나는 3월, 4월을 전후로 대출규제는 다시 강화될 것으로 본다. 새 정부 초반에는 집값 잡기와 가계부채 연착륙이 중요할 것이므로 긴축적인 금융정책이 전망된다.
―지난해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총량 규제를 두고 실수요자들의 피해를 봤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정부가 금융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했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 정부 개입이 과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금융사들의 자율규제가 작동하지 않아 감독당국의 선택폭이 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현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에 대해 대체로 찬성하는 편인데, 우선 가계대출 총량관리는 시스템리스크 관리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만일 정부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가계부채가 폭증하면서 주택가격 상승세를 더욱 확대함으로써 후일 경제충격 발생 시 시스템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을 높였을 것이다. 잘 알다시피 시스템리스크가 발생할 경우 막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발생하는데, 정부의 개입은 시스템리스크를 예방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봐야 할 것이다. 시장개입이 지나치다고 비판하는 것보다 시장 개입이 실효성 있는지를 살피는 것은 필요해 보인다. 관련해서 정부가 개입하기 전에 금융사나 은행이 일찌감치 대출관리 자체 노력을 더 기울였어야 했다는 시각도 가능하다. 자금시장 왜곡은 일시적인 현상이며, 사후에 보다 큰 시스템리스크를 예방한다는 측면을 함께 봐야 한다. 여기서 정부의 시각과 금융사의 시각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금융사나 대출고객 입장에서 개별 대출이 바람직할 지라도 감독당국 입장에서는 시스템 전체의 경착륙 위험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소위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 때문이다. 다음으로 개인적으로는 DSR 규제를 좀 더 일찍 도입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한다. 연간 총액관리 부담을 조기에 소화했더라면 연말의 관리가 다소 용이하지 않았을까 싶기 때문이다.
―정부와 금융사의 책임에 대해 보다 명확하게 정의하자면.
▲ 은행의 탐욕과 구성의 오류를 감안할 때 시스템리스크로 확산되는 것을 막는 것은 정부, 감독당국의 당연한 책무다. 앞서 얘기한 금융의 양극화 문제도 유사하다. 금융사들이 이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정부에 부담을 떠넘기는 것은 은행의 공공성에 비춰 반드시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는 은행입장에서 ‘이익의 사유화, 비용의 사회화’ 추구로 보이는데, 저비용 예금자원 활용을 보장받은 은행의 행위로 적합한지 의문이다. 물론 은행이 시스템리스크를 모두 부담할 수도 없지만, 스스로의 자원과 정보를 이용해 이를 줄여나가는 노력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강조되는 포용금융과 국내에서 작년 법 시행 이후 강화되고 있는 금융소비자보호 등은 모두 은행의 이러한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들이다. 다만 감독당국이 개입하는 과정에서 금융사를 설득하고 소통하는 노력과 정부와 금융사간 책임분담 논의 등은 필요할 것이다.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은 사모펀드 사태 등 금융사고로 인한 소비자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감독체계를 개편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본지와 인터뷰 하고 있는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 |
금융사고의 원인은 산업진흥과 감독의 '모순'
금융위 감독업무, 금감원과 통합해야
―대선을 앞두고 금융 감독체계 개편이 금융권 핫이슈로 부상했다. 여야 모두 금융 감독체계 개편에 관한 법안을 발의했는데.
▲ 지난해 12월 2일 금융학회, 재무학회, 증권학회가 공동으로 오기형의원실, 성일종의원실과 더불어 금융 감독 개편을 주제로 국회에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심포지엄에서 여당의 오기형의원안, 이용우의원안 그리고 야당의 성일종의원안 등이 비교 발표되고 토론이 이어졌다. 현재 금융위원회는 ‘산업진흥과 감독’이라는 역할을 모두 담당하는데, 정책 우선순위에서 감독이 산업진흥에 밀리다보니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이라는 금융 감독의 본질적 기능이 무력화되는 결과가 초래됐다. 심포지엄 참가자들 대부분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금융사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대형사고는 금융위가 산업진흥과 감독의 두 기능을 모두 수행하는 모순된 구조에서 비롯됐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가장 최근의 사례가 바로 사모펀드 사태다. 과거 정부가 자본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일반투자자에게 투자문호를 크게 확대한 것이 결국 소비자 피해로 이어진 것이다. 당초 사모펀드 규제 완화시 금융감독원은 태스크포스(TF)에도 들어가지 못했는데, 실제로 감사원은 금감원 실무직원들에게만 감독부실의 책임을 묻고 금융위의 규제완화에 대해서는 조치가 없었다. 금융위원회가 수문을 열어놔서 물고기가 다 빠져나갔는데, 금감원이 고기를 놓쳤으니 책임지라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가장 바람직한 감독체계 개편은 무엇이라고 보나.
▲ 금융위원회 감독정책과 금융감독원의 감독집행 업무를 통합해야 한다. 통합감독기구의 최고의사결정기구로 감독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금감원을 민간기구(독립법인)로 하고, 최고의사결정기구는 내장형으로 설치하되 독립된 금감원에 책임성 조항을 강화해야 한다. 금융 산업의 진흥정책은 기획재정부에 이관하고, 감독정책은 금감원으로 통합해 독립된 조직으로 운영해야 한다.
―만일 새로 출범하는 정부에서도 감독업무를 통합하지 않는다면, 차선책은
▲ 통합하지 않으면 불분명한 책임소재가 지속되면서, 금융사고가 발생해 소비자피해를 초래할 것이다. 이러한 비용을 부담하면서도 정부 주도 하에 금융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선진국 문턱에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래도 감독기구 독립이 어렵고 통합이 어렵다면 금융위원회의 금융산업진흥 업무를 중장기 계획 수립과 입법 등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반드시 금감원에게 금융감독규정 재개정(제안)권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이는 감독업무 효율성 제고를 위해 꼭 필요하다. 금융위 구성을 합의제 행정기구라는 당초 취지에 맞게 조정하고, 민간위원 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추가적으로 금융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금융위에 규제완화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 금융위원장을 민간인으로 보임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금감원에 대해서는 전문성과 책임성 강화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해외 감독체계는 어떠한지, 우리가 참고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 감독체계는 전 세계에서 국가별로 단일형, 쌍봉형 등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어떤 국가의 어떠한 형태가 정답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가장 중요한 건,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모펀드 사태 등 금융사고가 터지면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새로운 기구를 설치하는 식으로 감독체계를 개편해 나간다는 것이다. 미국이 소비자금융보호국(CFPB)과 금융안정감독위원회(FSOC)를 신설한 것이 대표적이고, 영국도 금융위기 이후 금융행위규제청(FCA)을 분리신설해 쌍봉형 체계로 전환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고치려 들지 않는다. 금융사고로 인해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는데도 고치려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금융위가 현 체계를 최선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는데, 부정하기 어렵다. 계속해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는데 감독체계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설득력이 낮다. 문제가 뚜렷한데 개선 노력 없이 답이 없다고만 하는 것은 답을 안 찾겠다는 것과 같지 않은가.
☞2편으로 이어보기 [윤석헌 "비효율적 규제, 금융업 발전 저해...감독체계 개편 시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