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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최근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기조에 따라 시중은행들이 대출에 대한 문턱을 높인 가운데 실수요자는 물론 은행들마저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은행들은 ‘대출 중단’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은행 자체적으로 가동할 수 있는 대책들은 모두 다 소진했다는 전언이다. 이에 은행들과 실수요자들은 이르면 다음주 발표될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보완대책을 주시하고 있다. 은행 자체적으로 대출을 틀어막는 데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만큼 당국의 ‘유연한 대응’이 절실하다는 평가다.
◇ 막고, 또 막고...은행권 "대출규제 카드 모두 다 소진"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최근 들어 하루가 멀다 하고 가계대출 관리에 나서고 있다. 하나은행은 이날부터 비대면 주택담보대출 사품인 ‘하나원큐 아파트론’의 모기지신용보험(MCI) 대출 상품을 당분간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은행에 이어 국민은행도 이달부터 가계대출 신규 취급 한도를 영업점별로 관리하고 있다. 4대 시중은행 가운데 가계대출에 다소 여유가 있는 신한은행도 가계대출 총량 관리 차원에서 이달 들어 대출 모집인을 통한 전세대출 한도를 5000억원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다만 실수요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영업점에서 접수하는 전세대출은 따로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이렇듯 지금까지 시중은행들은 가계부채 증가세를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는 당국의 지침에 따라 대출금리를 올리고, 신용대출에 중도 상환수수료를 부과하는 등의 대책을 가동했다.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에 권고한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 6%를 준수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특히 은행들은 지난 8월 24일 NH농협은행이 가동한 ‘신규 주택담보대출 중단’이라는 최악의 상황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제 은행들이 가동할 수 있는 대출규제 카드는 모두 다 소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기조로) 은행들이 현재 시장에 풀 수 있는 대출 금액은 제한적인 만큼 가급적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은행 차원에서 세심하게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금융위원장 "가계대출 관리에 전세대출 제외"...다음주 보완책 주목
시중은행들이 다음주께 발표될 당국의 가계부채 보완대책을 주목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은행 자체적으로 대출을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당국의 뚜렷한 대책안이 절실하다는 평가다.
실제 최근 당국과 은행의 가계대출 관리 대책에도 불구하고 주택 매매 및 전세 관련 수요는 끊이질 않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52조7000억원으로 8월 말보다 6조5000억원 불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오래 전부터 지속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관리한 덕에 자산건전성도 양호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며 "다만 최근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가계부채가 언제, 어떻게 금융 리스크로 전이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우선은 당국의 기조에 따라 가계대출을 틀어막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시중은행들이 가계대출 문턱을 계속해서 높일 경우 은행들 입장에서 영업의 기회가 축소되고, 실수요자들은 이자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가계대출은 시중은행이 중장기 고객을 확보하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인데, 당국의 규제로 인해 이러한 기회가 아예 막히면서 신규 고객을 늘리는데도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고객들은 은행들 거래 실적에 따라 (대출에 대한) 우대금리를 받고, 은행들은 중장기적으로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계대출은 (은행의) 중요한 영업 수단 중 하나"라며 "그러나 최근 한은의 기준금리가 인상 기조로 돌아선 가운데 은행들이 가계대출마저 틀어막으면서 기업은 영업기회를 상실하고, 고객들은 금리를 낮출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 가운데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올해 4분기 중 전세 대출 증가로 인해 가계대출 잔액 증가율 목표가 6%를 초과하더라도 용인하겠다"고 밝히면서 향후 은행의 대출 관리에도 숨통이 트일지 관심이 쏠린다. 고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자리에서 "연말까지 전세대출, 집단대출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관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은행들이 주담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금리 인하 경쟁을 벌였고, 이 덕에 소비자들도 이자를 낮출 수 있었다"며 "그러나 현재는 은행들이 리스크가 적은 우량 고객들 위주로 대출을 제한적으로 공급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실수요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와 같은 금리 상승기에는 실수요자들이 벼랑 끝에 몰리지 않도록 당국 차원에서 보다 세심하고 촘촘한 대책을 가동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