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영화관(사진=연합) |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세계 영화관 산업이 침체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태평양 국가에서 흥행 실적이 상대적으로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옆 나라인 일본에서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고 수준의 박스오피스(흥행 수익)를 거둔 반면 한국은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11일 미 경제매체 CNBC는 박스오피스 집계기관인 컴스코어의 자료를 인용해 "지난해 세계 박스오피스는 2019년의 70% 수준인 124억 달러를 기록했다"며 "그러나 아시아태평양에서 차지한 세계 수익 비중이 2019년 41%에서 작년 51%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반면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지역에서의 세계 박스오피스 비중은 같은 기간 30%에서 18%로 급락했다.
특히 일본에서는 작년 10월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인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개봉이후 연일 박스오피스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흥행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59일 만에 300억엔대 수입을 돌파한 데 이어 개봉 72일 만에는 19년간 일본 역대 흥행 1위 타이틀을 지켜온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 작품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누적 수입(316억 8000만엔)을 훌쩍 뛰어넘었다. 전 세계 흥행수익은 3억 2000만 달러 이상으로 집계됐다.
이로써 지난해 일본 박스오피스는 전년대비 46% 하락한 12억 7000만 달러를 기록했는데, 같은 기간 2019년 대비 80% 급락한 22억 8000만 달러의 성적을 기록한 북미지역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CNBC에 따르면 작년 북미 영화관 수입 1위를 기록했던 타이틀은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작년 1월에 개봉한 소니픽쳐스의 ‘나쁜 녀석들:포에버’다. 누적 수입은 2억 400만 달러로 집계됐다. 그 다음으로는 2019년에 개봉한 ‘1917’, ‘수퍼소닉’, ‘쥬만지:넥스트레벨’ 등이 순위를 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한 작년 3월 이후 개봉작 중 상위권 매출에 이름을 올린 영화는 단 한편도 없었던 셈이다. 작년 하반기 개봉작으로 꼽힌 ‘크루즈 패밀리:뉴에이지’와 ‘원더우먼 1984’는 모두 수익이 3000만 달러를 밑돌았고 세계 관심작으로 꼽혀왔던 ‘테넷’의 경우 매출이 6000만 달러를 돌파하지 못했다.
CNBC는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이 미국에 비해 코로나19 대응을 상대적으로 잘했기 때문에 이 같은 실적을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CNBC는 "이들은 여행중단, 대규모 코로나19 진료소 구축, 역학조사, 마스크 착용 의무화,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 등을 시행했다"며 "이로 인해 확산세가 줄어들었고 경제 재개에 나설 수 있었다. 미국에서도 이런 조치가 있었다면 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컴스코어의 폴 데가라베디안 수석 미디어 애널리스트도 비슷한 의견을 내비쳤다. 그는 "이들 국가는 봉쇄조치, 역학조사, 마스크 의무 시행을 통해 확산세를 통제할 수 있었다"며 "감염자 수 감소와 엄격한 방역조치 등이 잠재적이 영화 관객들에게 더 큰 자신감을 실어주었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극장이 재개관한 8월 이후에는 아시아태평양 매출이 전 세계 박스오피스의 78% 가량 차지했다는 결과도 나타났다.
이와 함께 아시아태평양 국가에서는 미국과 달리 비(非)할리우드 영화들이 꾸준히 새로 개봉됐다는 점 또한 극장산업의 회복을 이끌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일본의 ‘귀멸의 칼날’에 이어 중국에서도 자국내 박스오피스에서 각각 4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린 두 편의 영화가 작년 하반기에 개봉됐다. CNBC는 "새로운 영화를 볼 관객들이 없었기 때문이 북미 박스오피스는 사실상 제자리다"며 "한정된 인원으로 재개관한 극장들의 경우에도 스타워즈, 죠스, 구니스 같은 레거시 타이틀이 대부분 재개봉됐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아시아태평양의 극장산업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실제 지난달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극장 총 매출은 전년 대비 73.3% 감소한 5103억원 정도로 추산됐다.
앞으로의 전망도 밝지 않다. 작년 11월 중순부터 국내에서 코로나19 3차 확산으로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자 임시휴업에 나서는 영화관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멀티플렉스 영화관 체인 CGV가 지난해 10개에 이어 새해부터 4개 지점에 대한 추가 임시휴업에 돌입했다. 메가박스 남양주, 제천, 청주사창, 북대구 등과 롯데시네마 청주, 평택 비전관 등도 휴업하거나 영업을 종료했다.
극장이 극심한 침체에 빠지면서 개봉하지 못한 채 대기 중인 작품도 줄줄이 쌓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메가박스의 이정세 본부장은 "오늘부터 1년 반에서 2년 정도의 라인업이 확보된 셈이지만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 해도 개봉 시기를 잡기가 쉽지 않다"며 "3년 정도의 영업이익이 2020년에 없어진 것이라 2019년처럼 좋은 성적을 3년 연속으로 올려야 원점으로 돌아올 수 있는 수준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