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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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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폭동진압법 사용법'...같은듯 다른 트럼프와 부시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0.06.05 14:57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사진=AP/연합)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미국 ‘흑인 시위’ 사건으로 촉발된 폭동진압법 발동 논란이 재조명되고 있다. 대통령이 직권으로 각 주에 군 투입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한 이 법이 마지막으로 발동된 것은 조지 H. W. 부시 대통령 시절인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 사태 때였다. 군을 동원해서라도 미 전역으로 확산된 시위를 진압하겠다고 최근 천명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분위기가 비슷한 듯 하지만 다른 면모도 보여 당시 상황이 재조명되고 있다.

LA 폭동은 1991년 25살의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이 백인 경찰 4명으로부터 무차별 집단 구타를 당했지만 이들 경찰이 모두 무죄 평결을 받자 분노한 흑인들을 중심으로 1992년 일어난 사건이다.

5일 미 CNN에 따르면 당시 부시 대통령은 폭동 3일째 군 투입에 필요한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이틀 뒤 1100여명의 해병대와 600명의 육군, 6500명의 주 방위군을 투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주지사가 방위군을 동원하지 않으면 자신이 직접 군대를 배치하겠다는 강경 방침을 밝혔는데, 이는 폭동진압법의 권한에 기반한 것이란 해석을 낳았다.

군을 동원해서 폭력사태를 진압하겠다는 방침은 외견상 트럼프 대통령과 부시 전 대통령이 비슷한 해법을 모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두 대통령의 대응법에 차이가 있다는 게 CNN의 설명이다.

부시 전 대통령은 군을 최후의 수단으로만 사용하겠다고 하다가 결국 폭동진압법을 마지못해 동원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가 폭력적 성향을 띠자 ‘법과 질서’라는 명분으로 초기부터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혀오다 적극적으로 군 투입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LA 시장이 전화를 걸어 군 투입을 요청한 뒤 행정명령에 서명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주지사의 주방위군 동원을 촉구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직권으로 군을 투입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황이다.

시위대와 활동가들을 대하는 태도 역시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부시 전 대통령은 LA를 둘러보고 흑인 거주자들과 만나기 위해 5일간 기다렸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대나 활동가 등을 만나지 않았고, 이번 사태의 진원지인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를 방문한다는 말도 아직 없다.

오히려 지난 1일 최루탄으로 백악관 앞에 있던 평화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킨 뒤 인근 교회를 이동, 성경책을 들어 올리는 ‘트럼프 쇼’를 연출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상황이다.

CNN은 윌리엄 바 법무장관이 그때나 지금이나 법무장관을 맡고 있고, 그가 강경론을 펼치는 부분도 두 대통령 시절에 발생한 폭력 사태 때와 공통점이라고 전했다. 부시 행정부 때 77대 법무장관을 맡은 바 장관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인 2019년 2월 85대 법무장관으로 다시 취임했고, 1992년 LA 폭동 때 연방군 소집을 당시 부시 대통령에게 권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CNN은 "1992년 부시 전 대통령은 최후의 수단이 될 때까지 폭동진압법 발동을 주저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주지사에 군 투입을 촉구하지만 몇몇 주는 군 동원이 필요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 트럼프의 ‘군 동원’ 엄포…결국 역풍 불렀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사진=AP/연합)



주목되는 것은 군을 동원해서라도 시위를 진압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침이 역풍을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업적으로 거론되는 미국 경제의 순항 기조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흔들리는 와중에 시위 확산이라는 위기에 봉착하자 군을 동원해 돌파하겠다는 취지였으나 이에 대한 반발이 전·현직 국방장관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국방부 정책차관을 지낸 제임스 밀러가 국방과학위원회 위원직을 내던졌고 마틴 뎀프시 전 합참의장을 비롯한 퇴역장성들도 시위 대응에 군이 끌려들어 가는 데 대한 공개비판에 나섰다.

급기야 에스퍼 장관은 지난 3일 오전 기자회견을 자청, 시위진압에 군을 동원하는 건 마지막 수단이라며 군 동원을 위한 폭동진압법 발동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예스맨’이자 충성파로 분류돼온 에스퍼 장관으로서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드는 발언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군내 기류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에스퍼 장관은 교회 방문 일정은 알았지만 사진촬영을 하는 줄은 몰랐다고 군색한 변명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에스퍼 장관의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군 동원에 대한 군내 혼란을 반영하는 것이라면서 군 수뇌부가 계엄령을 향한 조치에 동참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같은 날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도 트럼프 대통령이 국민을 분열시킨다며 맹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50년 전 군에 몸담으면서 헌법을 수호한다고 맹세했는데 같은 선서를 한 군이 시민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도록 명령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도 매티스를 향해 "미친개"(Mad dog)라고 맞받으며 강한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군의 반발을 의식한 듯,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진압용 동원 구상에서 한발 물러서는 모습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보수성향 매체인 인터넷매체 뉴스맥스와의 인터뷰에서 ‘법과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어느 도시에나 군을 보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그것은 상황에 달려있다.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 에스퍼 발언에 "트럼프 격노…후임자 후보명단 요청하기도"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 에스퍼 장관에 대해 격노한 상태이며, 한때 ‘경질’ 가능성까지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4일(현지시간) 백악관이 에스퍼 장관의 발표에 무방비로 허를 찔렸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에스퍼 장관이 준비해온 발언을 그대로 읽었다는 점에 격분했다고 보도했다. 원고를 읽었다는 것은 에스퍼 장관의 발언이 현장에서 말실수한 것이 아니라 ‘작심 발언’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화를 내며 에스퍼 장관을 대체할 인사들의 명단을 요구하기까지 했다고 악시오스는 보도했다. 하지만 현재로선 실제 경질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에스퍼 장관에 대해 몹시 화가 나긴 했지만, 주변의 측근 참모들이 에스퍼 장관을 현시점에서 해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참모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에스퍼 장관을 해임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악시오스에 전했다.

CNN 역시 복수의 인사를 인용, 현재 직면한 위기와 대선까지 5개월밖에 남지 않은 점 등을 감안, 백악관도 그를 해임하는 데 대해서는 꺼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 인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눈밖에 난 인사들에 대해 실제 해임할 때까지 한참 동안 힘이 빠진 채로 직을 유지시켰던 전력을 들어 에스퍼 장관도 ‘허수아비 장관’으로서 비슷한 길을 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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