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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8시간 30분 걸린 한진칼 '세기의 주총'...고성·비난에 '아수라장'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0.03.27 17:33

표대결은 조원태 회장 '완승'···힘 빠진 조현아 연합

▲한진칼은 27일 서울시 중구 소공동 소재 한진빌딩 본관에서 제7기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했다. 사진은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가 주주총회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에너지경제신문=여헌우 기자] "아니 저 XX가!", "그만 떠들고 앉으세요.", "회사에서 사람 많이 쓰셨나 봐요."

27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빌딩에서 열린 한진칼 제7기 정기주주총회 현장에서 나온 말들이다. 8시간 넘게 진행된 ‘마라톤 주총’이었다. 의장을 맡은 석태수 한진칼 사장은 "가만히 좀 계세요"라는 말을 수십차례 반복해야 했다. 주요 안건이 논의될 때마다 서로를 향한 고성과 비난이 빗발쳤다. ‘세기의 주총’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모습들이 계속해서 연출됐다.


◇ 주총 시작 3시간 넘게 지연...주주들 '불만 폭주'


출발은 순조로운 듯 했다. 오전 8시께부터 한진빌딩 앞에 관계자들이 하나 둘 몰려들었다. 채이배 민생당 의원, 참여연대 등은 8시 30분 기자회견을 열고 한진칼 경영 투명화를 위해 지배구조 개선 등을 골자로 정관을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근길 좁은 길에 여럿이 뒤엉킨 탓에 보행자들은 인도를 벗어나 버스전용차로로 위험하게 통행해야 했다.

주총장 밖의 분위기는 지난해와 다소 달라 보였다. 코로나19 여파로 취재진이 많지 않았고, ‘총수일가 퇴진’ 등을 외치며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도 없었다. 작년에는 ‘물컵 갑질’의 여파가 주총장까지 이어졌지만, 올해는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남매의 난’이 부각된 결과로 풀이된다.

주주총회 참석자와 입주사 외 건물 출입은 철저히 통제됐다. 사측은 입구 열감지기를 설치하고,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주주들은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26층 대강당에는 일정 간격을 두고 좌석이 배치됐다. 주총 시작 시간인 9시를 전후로 100여명의 주주가 참석했는데, 이는 예년의 절반 수준이다.

예민한 표대결이 펼쳐지는 만큼 개회가 상당히 늦어졌다. 한진칼과 조현아 연합 측이 각각 상대방이 확보한 위임장을 확인하며 시간을 끈 탓이다. 오후 12시가 넘어 주총이 시작됐고, 기다리다 지친 주주들은 동시에 고함을 질러댔다. 곳곳에서 "의장! 의장!" 하며 목이 터져라 울분을 토해냈다.

진행을 빨리 하라는 아우성이 터져 나오고 많은 이들이 개회 선언도 하기 전에 발언권을 달라고 생떼를 썼다. 마이크를 잡은 이들은 자신의 이익이나 정치적 목적을 위한 주장을 차례대로 펼쳤다. 1호 의안인 재무제표 승인이 가결되자 시계바늘은 12시 30분을 가리켰다.

▲채이배 민생당 의원, 참여연대 등이 한진칼 주주총회 시작 전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사진=에너지경제신문.


◇ 표대결 조원태 회장 '완승'...힘 빠진 조현아 연합

이날 한진칼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을 비롯한 이사 선임안건과 이사 보수한도 승인건, 정관 일부 변경의 건 등도 안건으로 다뤘다. 공교롭게도 작년 같은 날은 고(故) 조양호 회장이 대한항공 주총에서 사내이사직을 박탈당한 날이다. 이 때문에 몇 개월 전부터 조원태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통과 여부가 재계의 이목을 끌었다.

다만 반도건설의 일부 지분이 의결권을 제한받고,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국민연금이 조원태 회장 손을 들어주며 표대결은 예상보다 싱겁게 끝났다. 2번째 의안인 사외이사 선임에서 한진칼 측 추천 인원 5명이 전원 가결된 반면 3자연합이 추천한 4명은 모두 부결됐다. ‘본게임’ 3호 의안도 마찬가지였다. 조원태 회장은 찬성표 2756만 9022표(56.67%)를 받아 사내이사직을 유지하게 됐다.

김신배 전 포스코 의장 등 조현아 연합 측의 추천 인원들은 사내이사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4호 의안인 기타비상무이사 함철호 선임의 건에 대한 투표가 시작되자 시간은 오후 3시 30분을 넘어섰다. 발언권을 달라고 소리를 지르던 주주들도 이제는 다소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사실상 이미 승부가 갈렸다는 분위기가 조성된 영향이다. 때마침 자리를 뜨실 분들은 주주확인증을 반납해달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몇몇 주주가 자리를 뜨고 조현아 연합 측 기운이 빠지자 진행에 속도가 붙었다. 기다리다 지친 주주들이 "빨리 통과시킵시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쏟아냈고 제5호 의안인 이사 보수한도 승인의 건이 순식간에 통과됐다.

한진칼과 조현아 연합 측이 각각 제안한 정관 변경을 논의하는 동안에도 발언권을 달라는 이가 확 줄었다. 투표 초반 "진행요원이 표를 빼돌릴 수도 있습니다! 다들 잘 감시하세요", "KCGI 측이 투표 결과 검표할 수 있게 해주세요 의장!" 등 목소리가 들리던 때와는 180도 달라진 상황이다.

정관 변경과 관련해서는 특별 결의 요건을 갖춰야 가결되는 터라 한진칼과 조현아 연합에 제안한 안건이 모두 부결됐다. 특별 결의 사항은 참석 주식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통과된다. 논의 사항이 워낙 많아 의장인 석태수 사장은 7-5호 안건과 7-6호 안건의 집계 결과를 바꿔 말했다 정정하기도 했다.

마지막 의안에 대한 투표와 검표가 끝나고 폐회를 선언하자 시간은 오후 5시 30분이 넘었다. 석태수 사장은 마지막으로 "바쁘신 중에도 장시간 협조해주셔 감사하다"며 "한진칼 임직원들은 주주들의 의견을 경청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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