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권거래소(사진=AP/연합) |
미중 무역전쟁 등에 따른 글로벌 경기 둔화 공포에도 작년 하반기부터 상승세를 이어갔던 미국 뉴욕증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무너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 지난달 중순까지 중국에서 신규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급증세를 보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 증시는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랠리를 이어갔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질 수 있다는 공포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고, 미국 본토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미국 증시마저 속절없이 무너졌다. 뉴욕증시의 3대 주가지수는 27일(현지시간) 나란히 조정 장세에 진입했다. 통상 조정장세는 증시가 고점 대비 10∼20% 하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4% 이상 폭락 마감한 미 주요지수…‘초고속 조정장’
이날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1,190.95포인트(4.42%) 하락한 25,766.64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24일 1,031.61포인트 급락한 지 사흘 만에 1,000포인트를 웃도는 낙폭을 다시 기록한 셈이다. 포인트 기준으로만 단순 비교하자면,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낙폭에선 다우지수 120년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인 1987년 ‘블랙 먼데이’는 물론 2018년 2월 5일(-4.60%)에도 못 미친다. 블랙 먼데이 당시 다우지수는 22.6%의 하락률을 기록한 바 있다.
뉴욕증시 전반을 반영하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137.63포인트(4.42%) 내린 2,978.76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도 414.29포인트(4.61%) 하락한 8,566.48에 각각 마감했다. 28일 미 경제매체 CNBC는 "S&P 지수가 조정 장세에 진입하는데 불과 6 거래일 밖에 안 걸렸다"며 "이는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조정세에 진입했다"고 지적했다. 도이치방크의 토스텐 슬록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한 주 동안의 하락 속도는 1987년 블랙 먼데이의 급락을 능가한다"고 진단했다.
기존 고점과 비교하면 다우지수는 12.8%, S&P500지수는 12.0%, 나스닥지수는 12.7% 각각 하락했다. 특히 다우지수의 경우 지난 12일 29,551까지 오르면서 ‘3만 고지’를 눈앞에 뒀지만,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가 고개를 들자 곧바로 하락 반전했다. 여기에 미국 본토 역시 코로나19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경고음이 잇따르자 낙폭을 키우는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까지 자청해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애써 진화했지만 미국 내 지역사회에서 코로나19가 전파되고 있다는 가능성과 캘리포니아 주가 최소 8400명의 주민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발병 여부를 관찰하고 있다는 소식 등이 나오면서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는 분석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코로나19가 지역사회로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미국의 첫 번째 사례"라고 강조했다.
에센트 프라이빗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톰 헤인린 글로벌 투자 전략가는 "단기적으로 극도로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이라며 "코로나19 전문가도 없는 것 같으며, 투자 생활에서 이러한 상황을 이전에 본 적이 없다"고 우려했다.
◇ 조정세 진입하면 4개월 가량 지속
이렇듯 미 뉴욕증시가 조정 장세에 진입하면서 언제쯤 회복세로 진입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CNBC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났던 조정세들을 돌이켜보면 총 26건이 있었으며(27일 제외) 평균적으로 약 4개월 동안 고점대비 13.7% 낮은 수준에 맴돌고 있었던 것으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매체는 "이후 회복하는데 4개월의 시간이 걸렸다"고 덧붙였다.
CNBC에 따르면 가장 최근에 미국 증시가 조정 장세에 머물렀던 사례는 2018년 9월부터 12월까지였다. 당시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세계 경제 둔화 우려와 미국 정부의 셧다운 등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 긴축 기조 등이 맞물렸다. 미국 증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약세장’ 진입까지 눈앞에 두고 있었다. 통상 고점 대비 20% 이상 하락하면 약세장으로 분류한다.
CNBC는 이어 "이같은 분석은 증시가 약세장에 진입하지 않을 경우에만 해당이 된다"며 "약세장으로 진입하면 더 많은 고통이 따라 회복기간도 더 오래 걸린다"고 강조했다.
실제 미 증시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약세장으로 진입한 사례는 총 12건으로 집계됐다. 가장 최근에 일어났던 약세장은 금융위기가 일어났던 과거 2007년 10월부터 2009년 3월까지였는데 당시 증시는 해당 기간동안 고점대비 57% 폭락한 수준에 머물렀고 회복하는데 4년 이상 걸렸다.
CNBC는 "평균적으로 약세장은 14.5개월 동안 지속되며 회복하는데 약 2년이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월가의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지수(VIX)가 이날 42% 치솟으면서 39선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이는 이는 과거 2018년 12월 26일 최고치인 36.2를 상회하는 수치다. 2018년 당시 주요 지수가 약세장 진입까지 갈 뻔했던 적을 고려하면, 최근 투자자들 사이에서 드리우는 공포감이 지속될 경우 이번 폭락으로 인해 약세장 진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5대 은행 중 하나인 웰스 파고의 프라빗 친타옹바니시 전략가는 "VIX 지수가 2018년 4분기 대비 더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모양새다"며 "이는 시장이 얼마나 가파르게 매도세를 보여줬는지를 나타낸다"고 진단했다.
◇ 골드만 경고 "美 기업 성장 제로"…연준 금리인하 나서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사진=AP/연합) |
이렇듯 약세장에 대한 공포가 커지는 가운데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이 코로나19과 관련해 공개한 투자노트가 금융시장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만든다. 이날 골드만삭스의 데이빗 코스틴 수석전략가는 "2020년 미 기업들의 순이익 성장률은 제로(0)에 달할 것"이라며 "바이러스의 확산세를 반영해 순이익 전망치를 조정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1분기 중국 경제의 심각한 침체, 미 수출품에 대한 수요둔화, 미 기업들을 둘러싼 서플라이 체인(공급망) 붕괴, 미 경제활동 둔화, 비즈니스 불확실성 증가 등의 요인들이 맞물린 것을 근거로 이러한 전망치를 내놨다"며 "코로나19가 심각한 팬데믹으로 번질 경우 미 경제의 침체기가 지속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럴 경우, S&P 500 기업의 순이익은 전년 대비 13%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골드만삭스는 S&P 500을 비롯한 뉴욕증시 3대 지수는 당분간 하락세를 기록할 것이라고 관측하면서 S&P 기업의 올해 주당 순이익(EPS) 전망치를 기존 174달러에서 165달러로 하향 조정했다. CNBC는 "이는 올해 0% 성장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역시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경제 성장률이 2.8%로 둔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럴 경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 수준이다.
이에 따라 당장 투자자들의 시선은 ‘최후의 보루’ 격인 연준에 맞춰지는 모양새다. 코로나19가 글로벌 침체의 뇌관이 되는 것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연준의 금리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시카고상품거래소(CME) 그룹의 페드와치 툴에 따르면 27일(현지시간) 기준 연방기금금리 선물은 오는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0.25%포인트 금리 인하가 이뤄질 가능성을 98.5% 반영했다. 연준의 금리 인하에 대한 가능성은 이달 20일, 25일까지만 해도 기준 각각 8.9%, 33.2%에 그쳤다. 이는 시장이 경기 부양을 위해 연준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글로벌 증시도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해 급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2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증시의 FTSE 100 지수는 3.49% 하락한 6,796.40에,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의 DAX 지수도 3.19% 내린 12,367.46에 각각 마감했다. 프랑스 파리 증시의 CAC40 지수도 3.32% 내리는 등 유럽 증시도 일제히 3%대 낙폭을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브라질을 비롯해 남미 증시도 폭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날 7% 폭락했던 상파울루 증시의 보베스파(Bovespa) 지수는 이날 2.59% 추가 하락했다.
한국의 경우 국내 확진자가 2천명을 돌파하면서 코스피가 5개월 만에 장중 2000선이 무너졌다. 28일 오후 2시 15분 현재 코스피는 전일 대비 65.07포인트(3.17%) 내린 1989.82에 거래되고 있다. 같은시각 코스닥 지수는 26.32포인트(4.12%) 하락한 611.74를 나타내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