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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군사정보협정', 日 경제보복 대응할 靑히든카드 될까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9.07.19 13:47

청,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재검토 시사
경제문제에서 안보문제로 전환

▲지난 2016년 11월 23일 서울 국방부 청사에서 한민구(오른쪽) 국방부장관과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가 양국을 대표해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일본 경제보복에 대한 청와대의 히든카드가 준비되고 있다. 청와대는 18일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하면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 회동에서 한일 정보협정에 대해 "지금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다만 상황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할지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2016년 11월 발효된 한일 정보협정은 1년씩 연장되며 한국과 일본 중 한 국가가 만기 90일 전인 다음 달 24일까지 종료를 통보하면 파기된다.

청와대가 의중을 내비친 한일군사정보협정 재검토 방침은 일본 경제보복에 대응하는 한국의 다목적카드 중 하나다. 먼저 미국이 이번 한일 경제전쟁에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중재자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미국의 참여를 압박하는 효과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청와대에 "한일 정보협정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이다. 청와대의 의중은 한일군사정보협정 재검토를 통해, 한미일 안보협력을 유지하려는 미국을 지렛대로 외교적 해결을 위한 동력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북핵에 대비한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의 핵심 축인 한일 정보협정 수정 및 폐기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일본의 추가 보복 움직임을 경고하는 동시에, 미국이 좀 더 적극적인 관여에 나서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실제로 이 카드가 효과를 볼 여지는 있다. 한국과 일본이 맺은 군사정보협정이긴 하지만 미국은 일종의 ‘중매쟁이’로서 양국 협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했고 밀어붙였다. 미국은 이명박 정부 때 이 협정을 극비리에 추진하다가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논란을 빚었고 협정작업도 중단돼 유야무야돼 버렸다. 하지만 미국은 박근혜 정부 때 이 협정체결을 다시 추진하기 시작한다. 미국은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잇는 삼각동맹의 연결고리로서 한일군사정보협정 체결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야당과 진보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일군사정보협정을 일사천리로 진행해 2016년 11월 협정 체결을 이뤄냈다. 협정 체결 당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헌정 파괴와 국정 농단도 모자라 군사 주권마저 팔아넘기는 매국 정권과 매국 국무회의"라고 비난했다. 또 당시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 주도로 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의원 52명이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효력 정지 특별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렇듯 미국이 중요시해온 한일군사정보협정이 일본 경제보복 사태로 깨질 위험에 처해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 아베 총리도 바로 이 부분에 대해 부담을 가질 수 있다. 미국의 한미일 삼각동맹 체제가 일본의 경제보복 때문에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미국도 한국의 협정 파기 움직임에 대해 즉각 반응을 나타냈다. 미국 국무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며 검증 가능한 비핵화’(FFVD)를 달성하기 위한 공동 노력에서 중요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또한 국무부는 "(GSOMIA가) 북한의 비핵화에 대응하는 양국(한일) 국방 관계의 성숙도를 보여줄 뿐 아니라, 한미일 3국 간 조정 능력 개선에도 기여한다"며 "공동 위협에 대응한 정보 공유 능력은 동북아의 안보와 번영을 위한 한일 양자 또는 한미일 3자 협력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이 체결되고 이틀 뒤인 11월 25일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을 비롯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체결 무효추진 모임’ 소속 의원들이 국회에서 야3당 143명의 국회의원 서명과 함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무효 선언문‘을 발표했다. (사진제공=강창일 의원실]


한일군사정보협정 재검토 움직임은 한일간의 경제전쟁이 동북아 안보전쟁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청와대가 노리는 것도 경제보복 문제를 미국과 연계된 안보문제로 치환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이에 대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조치가 발동돼 수출 규제가 광범위하게 전면적으로 시행이 되면, 그것이 경제 보복을 넘어서서 이른바 안보 문제로 전환이 되는 것이다. 8월 말에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갱신하게 되는데 그것을 일본이 스스로 깨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이트리스트가 해제된다는 것은 한일 간의 안보상 신뢰가 없는 것을 의미하는데, 어떻게 그런 나라와 군사 정보를 교류하고 보호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제외조치를 하면 한국도 한일군사정보협정 파기로 맞불을 놓겠다는 것이다. 여론도 "일본이 한국과의 신뢰관계가 훼손됐다고 주장하며 경제보복에 나선 만큼 우리도 GSOMIA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일본제품을 사지 않겠다는 소비자가 절반을 넘어서고 있고,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도 대일 강경발언 이후 3%p 오른 것과 무관치 않다. 여론이 일본에 강경대응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서서히 결집이 되는 양상이다. 청와대가 한일군사정보협정 재검토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런 여론의 흐름과 맞물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군사협정 폐기는 정동영 대표와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특히 강력하게 주장했다. 두 대표는 아베 총리 때문에 한일군사정보협정이 파기되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규정해줘야 그 자체로 부담을 느낄 것이고 화이트리스트 제외조치 카드도 쉽게 꺼낼 수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 문제에 대해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 여야5당 대표 청와대 회동 뒤 발표문 작성 때 ‘한일군사정보협정 파기를 굳이 발표문에 넣어야 하느냐’는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심상정 정동영 대표는 ‘화이트리스트에서 우리를 삭제할 경우, 우리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갱신 못 한다. 이대로 파기다’ 이렇게 넣자고 했는데 황 대표의 반대를 발표문에서는 빠졌다고 한다. 한일군사정보협정 재검토에 대해서는 청와대, 일부야당과 한국당의 시각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보수층 일각에서는 ‘한일군사정보보협정을 파기하는 것은 일본과의 동맹을 파기하는 것뿐 아니라 미국과의 혈맹관계에도 손상이 가는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렇듯 한일군사정보협정 재검토와 관련해 진보-보수 갈등 논란이 확산되자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과 관련한 정의용 실장의 발언은 기본적으로 유지 입장"이라며 "다만 상황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할지 검토해볼 수 있다는 원론적 입장의 발언이었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그래도 논란이 더 커질 조짐을 보이자 19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등 경제보복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연관성과 관련해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연계돼 있지 않다"고 거듭 밝혔다. 청와대가 한일군사정보협정 파기가 공식화되는 듯한 움직임에 일단 제동을 건 것이다. 여기에는 청와대의 재검토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측의 압력이나 속도조절 요구가 있었을 수도 있다. 

한편 한일군사정보협정 카드는 미국을 움직이게 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과 일본이 GSOMIA를 추진하라고 뒤에서 압력을 넣은 게 미국이기 때문에 청와대가 파기를 적극 추진할 경우 미국이 한일 갈등을 더 이상 제 3자의 일이 아닌 자국의 이해관계가 걸린 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경제 갈등이 외교·안보 분야로 확산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측 입장은 "GSOMIA가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경제 분야 갈등으로 어떤 경우에도 안보 분야가 교차 오염(cross contamination)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도 한일군사정보협정 연장을 바라는 분위기가 있다. 고노 다로 일본 외상은 최근 "한일 관계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지만, 북한 문제를 비롯해 공조해야 할 과제에 대해서는 계속할 생각"이라고 밝혔다(중앙일보). 북한 핵위협이 일본 안보의 최대 현안인 만큼 한일군사정보협정이 파기될 경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과정에서 더욱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 한일군사정보협정을 보면, 일본은 정보수집 위성 5기, 이지스함 6척, 지상레이더 4기, 조기경보기 17대, 해상초계기 77대 등 고급 정보자산을 통해 얻은 영상정보 등을 한국에 제공하게 되며 한국은 탈북자나 북중 접경지역의 인적 네트워크(휴민트), 군사분계선 일대의 감청 수단 등을 통해 수집한 대북정보를 일본에 전달하게 되는 것으로 나와 있다.

한국만이 생산해낼 수 있는 북한 고급정보를 일본이 공유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일본도 안보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는 국내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 한일군사정보협정은 북한의 핵위기가 고조될 때 일본이 자국 안보차원에서 한국과 협정을 체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동안 청와대는 GSOMIA를 당장은 아니더라도 경우에 따라 ‘검토해볼 만한’ 대일, 나아가 대미 카드로 봐왔던 것으로 알려진다. GSOMIA가 한국의 안보 필요성보다 미·일의 필요로 체결됐다는 인식이 그 배경이다. 이런 미국과 일본의 안보문제 틈새를 파고든다면 경제보복 문제를 해결하는 다목적카드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경제신문=성기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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