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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태-한진칼 흔들기' 투트랙 전략...1천억 모으는 KCGI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9.05.23 08:33

"5호 펀드는 ESG 투자용이다" 한진칼 주식 직접매입 부인
증권가 "우군 자금지원 통해 결국 한진그룹 압박 가능성"

▲서울 중구 한진그룹 본사.(사진=연합)


국내 행동주의 사모펀드(PEF) KCGI(일명 강성부 펀드)가 사모펀드 등기부등록을 완료하고 1000억원의 자금을 모집 중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그 자금이 어디에 쓰일지 관심이 집중된다. 증권가에서는 KCGI가 이 펀드를 통해 한진칼 지분을 간접적으로 매입하고, 결국 조원태 한진칼 대표이사 회장 등 오너일가를 흔드는 방식을 취할 것으로 보고 있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CGI는 지난 15일자로 ‘케이씨지아이제1호의5사모투자’ 설립 등기를 완료하고, 각 기관이나 투자자를 통해 1000억원의 자금을 모집하고 있다. [단독] KCGI '한진칼 지분' 추가 매입한다...조원태 회장과 본격 맞대결

KCGI는 지난달 ‘케이씨지아이제1호의3 사모투자합자회사’ ‘케이씨지아이제1호의4 사모투자합자회사’ 출자금을 통해 한진칼 지분을 14.98% 확대했는데, 최근에 등록한 5호 펀드는 앞에 두 펀드와는 조금 성격이 다른 것으로 전해졌다. 5호 펀드는 투자대상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금을 먼저 모으고 이후 투자처를 찾아 투자하는 방식의 ‘블라인드 펀드’다. 투자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KCGI는 이 펀드 모집을 완료한 이후 기업 승계나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한 기업에 주로 투자한다는 복안이다.

▲KCGI가 지난 15일 법원에 사모펀드 등록을 완료했다.(자료=법원 홈페이지)


특히 KCGI는 해당 펀드를 조성하는 이유에 대해 한진칼 매입보다는 ESG에 투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유연한 투자전략 관점에서 단순 재무성과 지표 외에 환경(Environment), 사회책임(Social responsibilities), 지배구조(Governance)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이에 따른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ESG 점수가 개선되는 기업이나 업종에 주로 투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증권가에서는 KCGI가 5호 펀드를 활용해 직·간접적으로 조원태 회장 등 오너일가를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KCGI의 설립 목적과 5호 펀드의 투자 대상, 그간의 행보 등이 모두 ‘조원태 회장 등 오너일가’로 모아지기 때문이다.

우선 KCGI를 이끄는 강 대표는 국내 대표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로, 2017년 사모투자전문회사 LK투자퍼트너스 대표를 지내던 2015년 당시 상속세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요진건설산업의 지분 45%를 확보하며 2대 주주로 올라섰던 이력이 있다. 요진건설은 공동창업자였던 고 정지국 회장이 2014년 말 별세하면서 6월 말까지 상속세를 납부해야하는 처지였다. 강 대표는 2년 뒤 지분을 최대주주에게 되팔아 200%가 넘는 수익을 실현한 것으로 전해졌다. 요진건설 사례는 현재 조원태 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가 약 20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 납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과 상당히 유사하다.

KCGI의 설립 배경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강 대표가 KCGI를 설립한 것은 단순 한진그룹을 공략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KCGI는 지난해 7월 기업 승계와 지배구조개선을 통한 기업가치 증대를 목표로 설립됐다. 설립 한 달 만에 1600억원 규모의 블라인드 펀드를 조성했고, 프로젝트 펀드도 꾸려 코스닥 상장사인 이노와이어리스를 인수하는 등 활동을 했지만 강 대표와 KCGI 모두 수면 위로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KCGI가 한진칼, 한진 지분을 사들여 주요 주주로 올라서며 공식적으로 한진그룹과의 정면 대결을 선언한 것은 장기적으로 그룹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오너 리스크를 줄인다면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즉 KCGI의 설립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기업이 한진그룹인 셈이다.

이같은 점을 감안하고 KCGI의 행보를 보면 5호 펀드의 목적 역시 한진그룹 압박용일 가능성이 크다는데 무게가 실린다. KCGI는 대외적으로 1000억원 규모의 5호 펀드를 통해 ESG 점수가 개선될 기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는 단순 5호 펀드에 국한된 내용이 아니다. KCGI의 설립 목적이나 한진그룹 주요 주주로 등극한 이유, KCGI가 홈페이지에서 밝힌 향후 계획 등을 종합하면 5호 펀드를 결성한 것 역시 오너일가를 압박하기 위해 지분을 늘려야 하는 KCGI의 행보와 같다.

▲KCGI가 홈페이지에서 밝힌 GSE 전략. GSE에는 지배구조개선, 기업승계, ESG 책임투자 전략 등 내용 포함.(사진=KCGI 홈페이지)


KCGI는 홈페이지에서 "2대, 3대 주주로서 행동주의 전략을 구사하고, 지배구조 개선 및 시너지를 창출해 기업가치를 극대화하겠다, 중장기적으로 유연한 관점에서 ESG 점수가 개선될 기업에 투자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는 KCGI가 최근 투자자들에게 피력한 5호 펀드의 목적과 동일하다.

물론 KCGI의 5호 펀드가 반드시 한진칼 지분 추가 매입용으로 쓰인다고 무조건 단정하기는 어렵다. 말 그대로 기업 승계나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한 다수의 기업에 투자할 가능성도 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한진그룹은 이 두 목적을 모두 충족한다는 것이다. KCGI가 1000억원의 펀드를 통해 특정 기업이 아닌 여러 기업에 투자한다고 해도 그 포트폴리오에 한진칼 등 한진그룹주가 빠질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KCGI의 행보와 앞, 뒤 내용을 종합해보면 5호 펀드를 조성하는 것은 한진칼 등의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한 카드일 가능성이 크다"며 "한진그룹은 지배구조, 가업 승계와 연관된 대표적인 기업이기에 ESG 투자용이라고 명명한 5호 펀드의 자금 역시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한진그룹의 지분을 매입하는데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ESG의 G는 지배구조를 의미하기 때문에 KCGI가 조성 중인 5호 펀드가 대외적으로 ESG 관련 펀드라고 해도 결국 한진칼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한, 혹은 그와 유사한 펀드라고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며 "KCGI는 원래부터 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만든 운용사이므로 ESG 펀드를 조성하는 것이 이상하거나 특별한 일이 아니다"고 밝혔다.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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