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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 노인 5명의 애끓는 저승길...창작오페라 ‘검은 리코더’ 웃음 반 눈물 반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9.03.28 18:08

라벨라오페라단, 윤미현 작가·나실인 작곡가와 ‘노인 소외 문제’ 정면으로 다뤄 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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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라오페라단의 창작 오페라 ‘검은 리코더’가 지난 3월 22∼23일 서울 강동아트센터에서 공연됐다.

[에너지경제신문=민병무 기자] "저절로 눈물이 흘렀어요. 내일 시골에 계신 할머니를 뵈러 가야겠어요."

고독사한 노인들의 애환을 담은 라벨라오페라단의 창작 오페라 ‘검은 리코더’를 본 관객들이 "감동적이었다" "최애 오페라다" "또 보고 싶다"라며 호평을 쏟아냈다. 각기 다른 아픈 사연을 가진 5명의 고독사 할머니·할아버지와 이들을 저승길로 안내하는 한 청년이 펼치는 스토리는 공연 내내 ‘웃음 반 눈물 반’ 무대였다.

지난 3월 22~23일 서울 강동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한 ‘검은 리코더’는 출연진·스태프 100여명이 오랜 시간 준비한 웰 메이드 작품이다. 기존의 비슷한 연출과 의상, 그리고 뻔한 구조를 벗어나 참신하고 화려한 공포 스릴러를 선보였다.

빅히트의 1등 공신인 윤미현 작가의 대본과 나실인 작곡가의 음악은 깊은 공감을 이끌어 냈다. 두 사람의 퍼펙트 호흡은 이 작품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8년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이유를 충분히 증명했다.

윤미현 작가는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수상한 뒤 ASAC 창작희곡공모 대상, 서울연극제 희곡상, 부산·대전 전국창작희곡공모 당선, 대한민국연극제 대상, 희곡아솟아라 당선,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 등으로 이름을 날렸다. 또 나실인 작곡가는 중앙콩쿠르 입상자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및 박사 수료, 독일 뒤셀도르프 시립음대 디플롬, 국립오페라단·서울시오페라단·TIMF 앙상블·서울시향·KBS교향악단·광주시향 위촉작품 발표 등으로 실력을 쌓아왔다. 작품의 스펙트럼도 넓어 오페라뿐만 아니라 음악극, 발레 등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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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라오페라단의 창작 오페라 ‘검은 리코더’가 지난 3월 22∼23일 서울 강동아트센터에서 공연됐다.

‘검은 리코더’는 믿고 보는 오페라단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는 라벨라가 프로덕션을 맡아 공연 전부터 관심을 받았다.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의 틀에 박힌 오페라를 벗어나 한글로 모든 노래와 대사가 연출돼 자막 없이도 즐길 수 있었다. 가슴 절절한 아리아는 울컥 눈시울을 붉혔고 곳곳의 해학적 표현은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대중과 적극 소통하는 새로운 오페라의 전형을 보여준 셈이다. 또한 소리얼필하모닉오케스트라, 메트오페라합창단, 정성복J발레단, YS어린이공연단이 함께 참여해 더 풍성한 콘텐츠를 선사했다.

특히 장을분 할머니와 유인자 할머니의 솔로 부분에선 손수건이 필수품이 됐다.

"날마다 살아도 모든 게 신기하던데. 엉덩이에 똥 묻히고 골목을 돌아다니는 영철이네 개새끼도 반갑고. 어쩔 때는 그 똥구멍도 참 예뻐. 한여름에 쭈쭈바 하나 빨아먹어도 달고. 핫도그에 그 케첩 뿌려 먹는 것도 좋고. 좋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마른 날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에 피어오르는 그 흙먼지도. 벌레 먹은 나뭇잎이 거리에 가득 쌓인 것도 좋고." 자식에게 버림받은 ‘현대판 고려장’을 상징하는 장을분 할머니의 노래는 삶의 애착과 평범한 일상의 고마움을 간절하게 드러내 뭉클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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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라오페라단의 창작 오페라 ‘검은 리코더’가 지난 3월 22∼23일 서울 강동아트센터에서 공연됐다.

"어미는 나무 속을 긁어내 구멍을 파낸 리코더처럼. 늘 예쁜 소리 내며 웃고 있어야 하는 거야. 자식들이 손을 움직여 소리를 내는 리코더처럼. 어미는 리코더 같아야 한다니깐. 그렇게 하길 바라잖아. 어미는 찬장 속 그릇 같아야." 또 유인자 할머니의 아리아는 자식들에 대한 아련하고 애틋한 감정이 적절하게 드러나 감동을 느끼게 해줬다.

대중적인 시도와 참신한 아이디어로 2019시즌 스타트를 끊은 라벨라오페라단의 차기작도 큰 기대를 갖게 한다. 라벨라는 오는 11월 예술의전당에서 국내 최초로 도니제티의 ‘마리아 스투아르다’를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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