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근 현대상선 사장 |
[에너지경제신문 송진우 기자]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연임에 성공한 바, 임기가 아직 2년 넘게 남았지만 갑자기 용퇴를 결심한 것. 임기 중 돌연 용퇴를 결심한 만큼 ‘15분기 연속’ 이어진 적자행진에 대한 직·간접적인 압력이 존재했던 것은 아닌지 업계 관심이 쏠린다.
20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어제(19일) 현대상선은 유 사장 용퇴와 관련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유 사장은 이날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2020년 이후 현대상선의 새로운 도약은 새로운 CEO 지휘 아래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며 사퇴를 공식화했다.
중도 사퇴하게 된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그는 "지난 2년 반 동안 현대상선 재건을 위한 기초를 닦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하며 재임 기간 동안 소회를 짧게 풀었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2만 3000TEU급 컨테이너선 12척을 포함한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을 발주, 2021년께 세계 10대 조선사로 올라설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유 사장은 현대종합상사, 현대건설을 거쳐 1986년 현대상선에 입사했다. 2008년~2010년 현대상선 자회사 해영선박 대표이사를 지냈고, 2012~2014년 처음으로 현대상선 대표이사를 맡았다. 이후 3년 동안 인천항만공사 사장으로 일하다 2016년 9월 다시 현대상선으로 복귀, 지금까지 대표이사로서 일했다.
유 사장을 현대상선으로 다시 불러들인 것은 현대상선 1대 주주에 오른 산업은행이었다. 당시 현대상선은 해운업 불황으로 위기에 직면, 현대그룹을 떠나 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관리를 받게 됐다. 같은 해 7월 출자전환을 통해 현대상선의 최대주주를 차지한 산은은 첫 CEO 자리에 유 사장을 선임, 경영정상화를 주문했다. 유 사장은 지난해 3월 재선임에 성공하면서 이른바 ‘롱런(Long-Run)’ CEO 탄생을 예고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업계 안팎에서 실적 악화에 대한 ‘책임론’ 논란이 일면서 입지가 위태로워졌다. 애초 지난해 3분기 물동량 증가, 운임 상승 등 계절적 요인에 기대 ‘반짝’ 흑자전환을 예고했지만 예상치 못한 유가 상승으로 이마저도 실패했다. 현대상선은 2015년 2분기 이후 지난해까지 총 15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 적자행진을 면치 못했다.
유 사장은 지난해 ‘한국선주협회’해양진흥공사 업무협약 체결‘ 행사에서 "(흑자와 관련해) 확실한 타겟은 신조가 나올 2020년 2분기를 생각 중"이라고 말하며 흑자전환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시장 분위기 반전이 이뤄지진 않았다. 2016년 정부 지원으로 200% 이하에 머물렀던 부채비율이 지속된 적자로 900% 이상까지 치솟은 것도 장애물로 작용했다.
산은이 노골적으로 현대상선의 경영혁신을 강조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채권단은 지난해 현대상선 경영 실사보고서를 공개하면 "정부 지원이 없으면 당장 내년부터 부채가 자산을 초과해 자본잠식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압박했다. 이동걸 산은 회장 역시 "실적이 나쁜 직원을 해고해 고강도 경영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업계 안팎에서 이 같은 직·간접적 압박이 유 사장 용퇴로 이어지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한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안 좋은 실적과 관련해 제기된 책임론, 부정적인 기사 등 여론이 좋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며 "실적 부진에 빠진 현대상선을 이끌면서 (유 사장이) 적지 않은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사안에 대해 현대상선 관계자는 "개인적인 사정과 함께 복합적인 요인을 고려해 용퇴를 결정한 것으로 안다"며 "유 사장은 3월 주주총회가 열릴 때까지 사장으로서 맡은 임무를 해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상선은 3월 하순 주주총회에서 새로운 CEO 추천을 받고, 선임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