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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원 칼럼] 식물, 새 천년의 주인공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8.07.16 15:49

김세원 가톨릭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심우경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 조경식재학의 개척자로서 한국전통조경학회와 인간·식물·환경학회, 세계상상환경학회를 창립하여 지구 환경 보전운동에 앞장서온 분이다. 며칠전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심 교수의 출판기념회에 다녀왔다.

그의 신간 저서 제목은 ‘식물, 새 천년의 주인공’. 지난 천년은 기계의 시대였고 그 전 천년이 ‘신의 시대’였다면 새로운 천년은 식물이 주인공인 시대가 될 것이란 전망에서 붙여진 제목이다. 신의 시대에는 인간이 한없이 나약한 존재였었다면 기계의 시대에는 인간이 편리하고 효율적인 삶을 누렸으나 그에 따른 심각한 부작용을 감수해야 했다. 이제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 요즘, 하나뿐인 지구에서 인류가 제대로 살아가려면 지구의 원래 주인공이었던 식물의 역할에 주목하여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책의 구성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1장은 식물이 지구환경 보전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열섬 현상 축소, 향기 배출, 소음 차단, 오염토양 재생, 비보림 등 20개 항목으로 소개했고 2장에서는 식물이 어떻게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는지 인문학적 측면에서 정신건강, 영성, 신앙, 민속, 상징성, 원예치유 등 13개 항목으로 살펴보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영성관련 대목. 저자는 인간을 둘러싼 환경을 자연 · 생태적, 사회 · 경제적, 물리 ·공간적, 전통· 문화적, 인문· 상징적, 천문학적, 풍수지리적, 청각적, 미학 · 시각적, 영성적 환경의 아홉 가지로 나누고 이중 가장 중요한 영성적 환경을 ‘상상환경’으로 명명했다. 저자가 2015년 세계상상환경학회를 창설하게 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일찍부터 현실세계의 물리적 환경은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의 흐름을 고려하는 풍수지리적 환경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산수의 형세와 방향 같은 지리적 요인을 인간의 길흉화복과 관련지어 집과 도읍, 묘지터를 선택해야 한다는 풍수지리 사상은 신라말의 승려 도선에 의해 발전, 고려시대에 조정과 민간에 널리 보급되었고 조선초기 한양을 도읍지로 선정할 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지구환경문제에 관해 최초로 화두를 던진 학자는 예일대 켈러 교수로 1916년 저서 ‘사회 진화론’을 통해 산업사회가 되면서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만 중시하는데 잊혀진 영성을 위한 상상(想像)환경도 복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서양에서는 기독교의 전파와 함께, 우상숭배 금지가 강화되며 풍수지리와 유사한 전통이 단절되었으나 서양의 모든 성지는 원시신앙터이자 기운이 모이는 혈 자리로 종교건물이나 국가의 주요 건물을 그곳에 건설했다.

원시시대 인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물체에 혼이 깃들이 있다고 믿는 정령숭배사상을 공유하다가 3000년 전 고등종교가 출현하면서 서양의 유일신교와 동양의 다신교로 나눠지게 되었다. 서양에서는 고등종교가 등장하자 그전까지 믿었던 다신 숭배 전통은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금지하고 자연정복을 통해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한편 숲으로부터 발전된 동양문명권에서는 원시시대의 정령숭배사상을 유지한 채 도덕적 인간을 강조하는 다신교적 종교가 등장하여 서양문명과 대조를 이뤄오고 있다. 화이트 교수는 지난 1967년 사이언스 지에 투고한 ‘우리 생태위기의 역사적 근원’이란 글을 통해 서양인들의 인간 우월적 자연정복 사고가 바뀌지 않는 한 지구생태계는 몰락할 것이며 유일신 종교가, 자연을 외경하는 동양의 다신교적 자연관으로 바뀌어야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서양에서도 한국의 당산나무처럼 하늘 높이 자라는 거목을 우주목이라고 하여 땅속과 지상, 천상을 연결하는 신목(神木)으로 신성시하는 신앙이 존재했고 일본의 토속신앙인 신도(神道)도 신사를 노거수 아래 짓는 전통이 전승되고 있다고 한다.

행사가 끝나고 교정을 걸어 나오는데 깜박 잊고 베란다의 화분에 물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라 마음이 조급해졌다.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면서도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던 식물의 소중함을 새삼스럽게 되새기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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