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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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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아, 중앙선! 아, 지연선!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8.07.16 12:17

정종오 에너지부장

정종오

월 정기권으로 경기도 양평에서 청량리까지 무궁화 호를 타고 출퇴근한다. 한 달 정기권 왕복 요금은 약 5만7000원. 무척 싸다. 일반요금과 비교해 보면 절반가격이다. 양평에서 청량리까지 정상요금은 3100원. 왕복이면 6200원. 20일을 일반 요금으로 출퇴근하면 약 12만4000원이 들어가는 셈이다. 정기권의 ‘가격 파워’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기차로 출퇴근하는 낭만도 있다. 자리에 앉아 뒤로 마구 달려가는 전봇대를 보는 것도, 양수리를 지날 때는 짙푸른 강을 만나는 시간도, 폭우가 끝나고 저 멀리 새파란 하늘을 보는 순간도 즐겁다. 계절마다 색깔을 달리하는 풍경은 세월의 흐름을 읽게 한다. 매월 3, 8일자에 열리는 ‘양평 5일장’이면 기차 안은 시끌벅적 온갖 소리로 가득하다.

문제는 월요일이다. 월요일은 출퇴근하는 사람이 다른 요일보다 더 많다.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비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월요일은 기차를 타는 사람이 증가한다. 출퇴근하는 ‘정기권 족’은 보통 양평역에서 오전 7시2분 무궁화 호를 탄다. 양평역을 출발해 덕소역에 20분에 도착한다. 이어 청량리 역에 7시36분에 멈춘다. 청량리역에 내린 ‘정기권 족’은 지하철과 버스, 택시 등으로 환승해 그들의 일터로 향한다.

16일도 오전 6시55분에 양평역 대합실에 다다랐다. 5번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오늘은 연착하지 않겠지?’라는 희망을 품으면서. 월요일마다 7시2분 기차는 늘 늑장을 부렸다. 플랫폼에 도착해 안내 전광판을 보는 순간 ‘역시나’였다. 1~2분 연착하는 것도 아니고 무려 ‘6분 지연 도착한다’는 문구가 빨갛게 표시돼 있다. ‘6분 지연’은 ‘정기권 족’을 매우 당황스럽게 만든다. 청량리역에 36분쯤에 멈춘 뒤 뛰다시피 도착해야 42분, 44분 지하철을 탈 수 있다. ‘6분 지연’은 이 계획에 대한 모든 수정을 요구한다. ‘정기권 족’은 1분1초의 시간 계산을 한다. 스마트 시대에 기차 연착을 걱정하면서 출근해야 하는 이들은 늘 마음이 불안하다. 매주 월요일마다 연착되는 기차를 탈 때마다 ‘아! 지연선’이란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16일 무궁화 1626호 기차는 ‘7분 연착’해 7시9분에 양평역 5번 플랫폼에 도착했다. ‘정기권 족’의 얼굴표정이 굳어졌다. 안절부절 못하는 이들도 보였다. 기차는 10분에 출발했다. 기차에 타자마자 승무원에게 연착의 이유를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이 생뚱맞다.

"기관사가 열차를 플랫폼에 정차할 때 역마다 천천히 미끄러지듯이 운행하다보니 늦었다."

▲7시2분 청량리행 기차가 8분이 됐는데도 아직 플랫폼에 들어서지 않고 있다.


양평역에서 10분에 출발한 기차는 전 속력으로 달렸다. 무궁화 호의 평균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었는데 보통 때보다 빠른 속도감이 느껴졌다. 늦었으니 만회해 보자는 것일까. 속도를 측정한 결과 평균 시속 136km, 순간 최고속도는 시속 145km를 넘었다. 시간에 쫓기다보니 속도를 높이는 것이겠지. 이 뿐만 아니었다. 양평역에서 청량리역 구간에는 터널이 많다. 양평역을 떠난 지 얼마 안 돼 기차 안이 캄캄해졌다. 전등이 나가 버렸다. 곧이어 "전기장치 오작동으로 전기공급이 원활치 않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덕소역에는 8분이 늦은 28분에 도착했다. 20초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에 승하차 한 뒤 문을 닫고 열차는 출발했다. 계속 늦어지는 바람에 승하차 시간 여유도 줄었다. 안전사고에 대한 위험마저 느껴졌다. 36분에 도착해야 할 기차는 청량리역에 5분 늦은 41분에 도착했다. 안내방송은 "마지막역인 청량리역에 도착한다’는 말로 끝났다. "열차가 지연돼 죄송하다"는 사과방송은 ‘역시나’ 없었다. 기차가 연착되면 ‘사과방송’을 하는 게 상식인데 중앙선은 언제나 기대를 져 버리지(?) 않는다. 기차 문이 열리자 ‘정기권 족’의 질주가 시작됐다. 100m 달리기 대회도 아닌데. 환승 지하철역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남녀 불문하고. 무려 ‘5분’이나 연착됐으니 이후 일정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아! 중앙선! 오늘도 어김없이 연착된 기차로 내 다리는 내 의지와 관계없이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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