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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에너지] 국제유가 결국 '더' 오른다...헤지펀드 상승 베팅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8.05.10 07:59

이란 경제제재 불확실성에 급락, 중장기적으론 상승기조
2차 압박시 이란 원유수출 붕괴위험
공급 타이트해지며 헤지펀드들 매수
美 휘발윳값 상승 부메랑 맞을수도

▲(그래픽=에너지경제신문DB)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이란 핵협정(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서 탈퇴하기로 선언하면서 글로벌 원유시장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현재 핵협정으로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며 핵협정 탈퇴를 공식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5년의 핵협정은 이란의 비핵화나 테러리즘 지원 활동을 억제하는 데 실패했다"며 미국이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이란에 대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위험한 일"이라며 "미국은 이란에 고강도 제재를 재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로써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이던 2015년 7월 유엔 안전보장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과 독일이 이란과 체결한 핵협정은 3년 만에 존폐 위기를 맞게 됐다.

협상 전 과정을 주도했던 미국이 이탈해 동력을 상실한 데다 미 정부가 이란 경제 제재 조치를 재개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는 이란이 핵개발을 중단하는 대신 대이란 경제 제재를 해제한다는 합의안 골자를 깨뜨리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표에 따라 미 백악관은 대이란 제재 유예를 연장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오는 12일 의회에 통보할 방침이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제재 유예를 연장하며 "마지막 기회"라고 밝혔었다.

당사자인 이란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에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국영TV를 통해 "이란은 핵협정에 남아 미국을 제외한 다른 협정국들과 협력하겠다"며 "미국은 핵협정에서 탈퇴하면서 국제조약을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 국제유가 美 핵 협정 탈퇴날은 급락..."중장기적으론 상승세"

이란 제재 재개 가능성은 지난 해 6월 이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정책과 궤를 같이 하면서, 국제유가를 2014년 이후 고점까지 끌어올렸다. 7일 브렌트유는 4년만에 최고치인 배럴당 76.34달러까지 상승했고, WTI 역시 70.84달러를 기록했다.

이란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가운데 세 번째로 원유생산량이 많은 국가다. 이란산 석유에 대해 수출제재가 가해지면, 글로벌 원유공급이 줄어들면서 유가가 급등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미국의 ‘이란 핵협정 탈퇴’ 전망에 배럴당 70달러를 뚫었던 국제유가는 일단 이벤트 당일에는 급락세를 보였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6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장 마감 직전, 전거래일 대비 배럴당 1.53달러(2.16%) 내린 69.20달러에 거래 중이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6월물 브렌트유도 배럴당 1.32달러(1.73%) 하락한 74.85달러를 나타냈다.

원유시장의 최대 이슈가 마무리됐으니, 유가는 이제 내림세를 이어갈까. 그렇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일단 협정은 파기됐지만, 지정학적 리스크가 가격에 얼마나 선반영되어 있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앞서 미국 투자은행 캔터 피츠제럴드의 잭 알라디스 석유가스 애널리스트는 "미국 정부가 이란 핵협정 파기를 공식 선언한 상황에서, 이제 관건은 이란산 원유가 국제 시장에서 얼마나 차단될 것인 지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란 핵협정 파기로 하루 약 20만∼30만 배럴의 손실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알라디스 애널리스트는 "이란에 대한 제재가 재개되면 단기적으로 유가에 강한 상방압력을 가할 것"이라며 "범위와 시기에 따라 잠재적으로 배럴당 80달러선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시장이 핵협정 파기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어, 미국의 입장이 예상보다 덜 공격적일 경우 다시 70달러선까지 매도세가 쏟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의 발표가 온화했던 것은 아니지만, 90일에서 180일 간의 제재 유예기간이 주어진 탓에 급락세를 펼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펀더멘털이 견고한데다, 베네수엘라, 예멘 등 다양한 지정학적 리스크가 산재해 있는 탓에 유가가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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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가 9일(현지시간) 3% 넘게 급등했다.(사진=연합)


실제 유가는 뒤늦은 랠리를 펼쳤다. ‘이란핵협정 탈퇴’를 선언한 당일에는 예상 밖 급락세를 나타냈다가, 하루 만에 급등세로 돌아선 것이다.

9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6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2.08달러(3.0%) 상승한 71.14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이는 2014년 11월 이후로 3년 6개월 만의 최고 수준이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6월물 브렌트유도 비슷한 시각 배럴당 2.36달러(3.15%) 오른 77.21달러를 나타냈다. 브렌트유는 장중 배럴당 77.43달러까지 올라 지난 2014년 11월 이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골드만삭스는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가 유가 전망치의 상방 위험을 가져왔고, 브렌트유는 올 여름 배럴당 82.50달러까지 상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세계 원유수출은 어떻게 될까? 최대 수혜자는 사우디?

▲사우디 아라비아의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사진=AFP/연합)


지난 2015년 이란산 원유 수출의 국제 제재가 해제된 이후, 이란은 중국, 인도, 한국, 일본과 같은 원유시장 ‘큰손’들을 주요 고객으로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유럽으로의 수출도 재개되면서, 현재 일일 250만 배럴을 수출하고 있다. 이는 이란의 전체 수출량 중 5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많은 애널리스트들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제재를 재부과할 경우, 유럽으로의 흐름이 리스크가 가장 크다고 보고 있다. 유럽의 은행과 기업들은 미 재무부의 위험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기 때문에 이란과의 거래를 바로 중단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른바 ‘2차 제재(세컨더리 보이콧)’가 포함돼 있는 지에 따라 파급 효과는 달라질 수 있다. 2차 제재는 제재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과 은행, 정부, 개인 등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는 방안이다. 2차 제재가 시행되면, 이란은 러시아 최대 알루미늄 생산기업 루살의 사례에서 봤듯 서구 금융 시스템에서 완전히 제외된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애널리스트들은 발표 당일인 8일 "원유시장에 즉각적인 타격은 없겠지만, 수백에서 수천 배럴 가량의 원유가 손실될 것"이라 예상하면서 "2차 제재가 현실화 될 경우, 이란 원유수출의 붕괴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휴스턴 소재 글로벌 로펌인 노튼 로즈 풀브라이트의 제이슨 헝거포드 파트터는 "미국 정부가 이란에 2차 제재를 가하게 되면, 유럽 기업은 유럽연합(EU)이 제재를 가한 것과 동일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헝거포드는 "관할권 안에 있는 은행 같은 경우도 미 재무부의 영향력 아래 있는 만큼, 이란과 금융 거래를 하는 데 엄청나게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일본 역시 미국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란산 원유 수입량을 줄일 수 있다. 실제 우리나라 정부는 이란 제재가 재개될 경우,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줄일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는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다음으로 이란에서 원유를 가장 많이 수입했다. 이란산 원유수입은 2017년 1억4787만 배럴로 전년 대비 32.1% 증가했다. 전체 원유수입의 13.2%를 차지한다.

인도 역시 수입을 일시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

다만 이란산 원유를 하루 60만∼70만 배럴 수 입하고 있는 최대 수입국 중국 같은 경우 미국의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상승? 하락?...헤지펀드들은 어떻게 포지셔닝하고 있나

▲지난 2014년 10월2일 뉴욕 월스트리트 지하철역 앞을 한 행인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AP/연합)


원유시장의 ‘큰손’ 헤지펀드들은 유가 상승에 베팅하고 있다. 헤지펀드들이 원유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 이상이다. 세계 원유 수요의 10일치 이상인 10억 배럴 이상의 물량를 거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하면서 공급이 타이트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순매수 포지션을 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이 이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경제 위기가 가속화됨에 따라 원유생산량이 급감하고 있다는 점도 지정학적 리스크를 높이는 요인 중 하나다.

미국의 대형 석유기업 코노코필립스는 카리브 해 일대의 베네수엘라 국영석유기업 PDVSA 자산을 매각하기 시작했다. 이는 11년 전 강제 국유화 결정이 내려진 2개의 프로젝트에 대해, 지난 달 20억 달러의 중재 결정이 내려진 데 따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를 바로 부과하지 않고 일정 유예기간을 설정하면서 이란에 대한 논조가 예상보다 부드러웠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베네수엘라 사태는 유가가 4년래 고점 수준을 이어가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 이란 핵협정 파기, 감산 중인 OPEC엔 어떤 의미일까?

오랜 기간 이어진 이란과 걸프만 국가들 사이의 정치적 긴장관계에도 불구하고, OPEC 회원국은 2016년 말 러시아와 감산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힘을 합쳤다. 배럴당 20달러대까지 저유가 여파에 정치적 반목을 덮을 만큼 경제난이 극심했기 때문이다.

감산 합의에 따라 OPEC 내 다른 회원국들이 생산량을 감축하는 가운데, 이란은 제재에서 막 벗어난 상황이라는 점을 인정받아 일일 원유생산량 380만 배럴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이란이 감산에서 제외될 수 있었던 까닭은 4년 간의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사우디 등 경쟁국들이 이란의 희생 속에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3년간의 저유가 시대가 막을 내리고 유가가 다시 오름세를 타자, 산유국들은 이제 막 과실을 이제 막 따먹고 있다. 사우디 등 OPEC 회원국들이 시장 안정을 위해 수출량을 늘리는 전략을 택할까?

미국 에너지 컨설팅그룹인 팩트 글로벌 에너지(FGE)의 아이먼 나세리 컨설턴트는 "사우디는 아직까지 이란 제재 부과로 인해 정책적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전하며 "베네수엘라나 앙골라와 같은 국가가 정정 불안정성으로 인해 목표치 이하로 생산할 할 때에도 시장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사우디는 이란 핵협정의 가장 강력한 반대자였으며, 예멘을 포함해 몇몇 지역에서 이란과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앞서 사우디의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방미 당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란에 강경 노선을 취할 것을 로비하기도 했다.

사우디는 비전 2030 사회 경제 개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유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애널리스트들은 한편으론 유가가 지나치게 오르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사우디 입장에서는 트럼프가 "OPEC이 인위적으로 유가를 부양했다"고 경고한 상황에서, 유가가 지나치게 오르도록 놔두는 것보다는 이란 감소분을 추가 수익으로 얻게 되는 것이 더 좋은 방식일 수 있다.


◇ 이란 에너지 섹터에 미치는 영향은?


제재 해제 이후 이란은 정제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장비와 기술을 수입하는 데 많은 돈을 투입했다. 국내 에너지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해외 연료 의존도가 높아 이를 낮추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란이 장기적으로 석유가스산업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1000억 달러(한화 108조 900억 원) 이상의 해외 투자와 기술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금융제재가 다시 부과되면 서구 기업들은 더이상 투자를 단행하지 않을 확률이 높고, 아시아와 러시아 기업들이 이란 에너지 산업에 진입한다 하더라도, 2022년까지 일일 원유생산량을 480만 배럴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이란의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의 에산 코만 중동 전략가는 "프랑스 대형 석유기업 토탈이 이란 가스전에서 지분을 잃을 위험에 처했다"며 "트럼프 정부가 신규 제재를 부과하게 되면, 토탈 외에도 2016년 2월 제재 해제 이후 새롭게 시장에 진입한 국제 석유기업들의 투자가 전부 위태로워 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미국에 부메랑으로 돌아올까?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협정 탈퇴 선언에 유럽 정부들은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으나, 미국 내에서도 강한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핵협정 파기 결정에 국제유가가 오름세를 보인다면, 미국 국내 연료가격도 상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유가 정보업체인 가스버디의 패트릭 디한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할 때,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25센트까지 급등할 수 있다"며 "최악의 상황이 현실화될 경우, 미국 전역의 평균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3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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