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지투데이) |
배럴당 10달러로 폭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던 국제유가가 3년 반만에 70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시리아 폭격, 이란 핵합의 파기 우려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맞물린 가운데, 전세계 원유 재고가 소진되고 있고, 원유 수요가 올해 내내 강력한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추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23일(현지시간) 국제유가는 배럴당 70달러로 바짝 다가서며 2014년 12월 2일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6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거래일보다 배럴당 0.24달러(0.4%) 상승한 68.6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6월물 브렌트유도 배럴당 0.65달러(0.88%) 상승한 75.09달러를 나타냈다.
지난 2014년 6월 배럴당 120달러까지 올랐던 국제유가는 수요부진과 강 달러, 미국 셰일오일 생산 등이 겹치면서 급락하기 시작했다. WTI는 2016년 초 배럴당 26달러까지 추락했다가 서서히 반등했다. 5월물 WTI는 지난 2주 동안 10.2% 급등했다. 2014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68달러 선을 넘어섰다.
◇ 국제유가 3년반래 최고치…이란+시리아+베네수엘라 등 변수 다양
▲지난 3년간의 WTI 가격 추이. (표=네이버 금융) |
1년 가까이 유가가 반등세를 이어가자 애널리스트들과 석유업계 관계자들은 다시 적정 유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4월 말부터 시작되는 여름 드라이빙 시즌, 이란 제재 부과, 베네수엘라와 이라크 대선,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목표의 달성 여부, 배럴당 80∼100달러를 목표로 삼은 사우디 등 각종 변수를 놓고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상황이다.
일부 애널리스트들들은 유가가 올해 안에 배럴당 80달러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다만, 80달러라는 높은 가격이 시장 펀더멘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유가가 배럴당 80달러까지 오르더라도, 시장의 펀더멘털이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에 랠리 흐름이 단기간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비회원국으로 감산에 참여하고 있는 오만의 무함마드 빈 하마드 알 루미 석유장관은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남은 기간 배럴당 65∼75달러의 유가가 현실적인 수치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바뀔 수 있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배럴당 60달러 후반대의 유가는 우리가 공존할 수 있는 너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적정 수준"이라며 "가까운 시일 안에 배럴당 65∼75달러선에서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비회원국을 이끄는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에너지장관은 "빠르면 이달 초 원유가격이 배럴당 8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이러한 상승세가 시장의 펀더멘탈에 의해서 정당화될 수는 없다. 지정학적 우려에 따른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노박 장관의 언급대로, 현재 원유시장에는 지정학적 변수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최근의 유가 랠리 역시 시리아와 예멘을 둘러싼 긴장감과 이란에 대한 신규 제재 등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공급 차질 우려에 따른 것이다. 이외에 남미 최대 산유국 베네수엘라도 큰 변수다. 베네수엘라의 산유량이 수십년래 최저 수준으로 급감한 가운데,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미국의 반대에도 5월 대선을 강행할 전망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기업 등에 추가제재를 가할 경우 올 하반기 유가에 와일드 카드로 작용하게 된다.
◇ 월가 투자은행 "올해 유가 배럴당 80달러 돌파 전망"
이처럼 다양한 변수 속에서 월가의 투자은행들은 유가가 올해 80달러를 터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는 미국 최대 셰일지대인 퍼미안 내 병목현상으로 미국 산유량 증산 속도가 둔화됨에 따라, 이번 분기 안에 배럴당 80달러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한다.
골드만 삭스는 2018년 내내 원유 수요가 강한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며, 올해 연간 원유 수요가 185만 배럴 성장할 것으로 추정했다. 골드만 삭스는 지난 1분기 원유시장이 2010년 4분기 이래 가장 강력한 연간 성장률을 기록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바클레이스는 이번 분기 유가에 강한 상승 압력이 가해질 것이라면서도, 하반기에는 조정장에 진입할 것이라 예상했다. 미국의 산유량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이란 제재에 대한 우려가 과대평가돼 있고, 베네수엘라 산유량 급감은 가격에 선반영되어 있어 3,4분기 유가가 고점 대비 10% 이상 하락할 것이라는 게 바클레이스의 주장이다.
원유시장이 수년래 가장 타이트한 가운데, 지정학적 리스크가 유가에 강한 상방압력을 가하면서 시장이 다시 공급과잉에 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더 높은 유가는 미국 셰일업계에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주고, 이는 원유 수요 증가세를 압박할 수 있다.
◇ 고유가에 미국 증산 흐름? 노동력 부족 등 생산 차질 ↑
문제는 미국 셰일업계는 현재 ‘생산 차질’에 직면해 있다는 데 있다. 지난 20일 세계 최대 유전서비스 회사 슐룸베르거(Schlumberger Limited.)는 생산 차질이 단기간에 해소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이러한 문제가 미국의 원유생산량 증가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
슐룸베르거의 팔 키브스가드 최고경영자(CEO)는 1분기 실적 발표 자리에서 "미국 셰일오일의 생산 문제가 재부상하고 있다"며 "광구 간 빈 공간을 시추하거나, ‘기본자본(Tier 1)’의 이탈로 잠재적으로 낮은 생산량이 우려되고, 인프라에 상당한 제약이 가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외에 노동력과 송유관 부족, 모래와 물 공급과 그 비용에 대한 이슈도 점증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서부 텍사스의 노동력 부족은 악화되고 있으며, 직접고용뿐만 아니라 서비스 및 인력 제공업체로까지 확대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미완결유정(DUC)의 수는 3044개로 지난 12월에 비해 381개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송유관 부족 문제는 아직 언급되지 않지만, 석유회사들은 투자자들로부터 수송용량 확보여부에 대해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다.
◇ 유가 더 오르면 수요에 '악영향'
그렇다면 수요 측면은 어떨까? 최근 월가에서는 유가가 이른바 ‘골디락스 존(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상태)’을 벗어나면서 세계 경제 성장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유가 상승세가 이어지면 향후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박과 금리인상, 소비위축 등 경제적 파장이 이어지고, 소비자 입장에서도 휘발유 가격에 대한 부담이 가중된다는 설명이다.
실제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이번 여름 미국의 운전자들은 휘발유 가격에 평균 갤런당 2.74달러를 지불해야 할 것으로 관측됐다. 이는 지난해보다 11% 상승한 것으로, 4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EIA는 휘발유 가격의 상승이 원유 가격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특히, 사우디가 열망하고 있는 브렌트유 배럴당 100달러가 현실화될 경우, 원유 수요는 심각하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는 내년 국영석유기업 아람코의 상장을 앞두고 기업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에, 시장 과열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프랑스 석유기업 토탈의 파트리크 푸야네 CEO 역시 "유가 상승으로 원유 수요가 소폭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칼리드 알-팔리 에너지, 산업, 광물자원부 장관. (사진=AFP/연합) |
유가 상승에 따른 수요 감소가 우려되고 있고, 원유재고를 5년 평균 수준까지 재고를 낮추겠다는 감산의 초기 목표를 이미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개혁 자금 마련이 시급한 사우디는 2018년 시장을 타이트한 상태로 유지하려는 신호를 잇달아 보내고 있다.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 아라비아 에너지 장관은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원유 재고를 5년 평균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OPEC의 감산 목표는 아직 완수되지 않았다"며 "2018년 말까지 시한을 연장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츠베타나 파라스코바 오일프라이스닷컴 전문가는 "지정학적 우려에 따라 유가가 급등하더라도 배럴당 75달러를 웃도는 유가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2014년 이전 고유가 시기 경험했듯 유가가 지나치게 오르면, 미국 셰일 외에도 세계 각국에서 원유를 쏟아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공급물량 증가분이 지난 해 견고한 성장세를 보인 원유 수요를 상쇄하면서 다시 시장을 공급과잉 상태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