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이아경 기자] 메리츠자산운용이 은행과 증권사를 거치지 않는 펀드 ‘직접판매’를 결정하고 업계 최초 비대면 계좌개설 및 펀드판매 애플리케이션을 내놓았다.
자산운용업계는 메리츠자산운용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직판’에 주목하고 있다. 판매 수수료를 낮춰 펀드를 더 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환매가 잦지 않은 장기투자 성격의 상품은 직판이 더 유용하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이미 판매사를 통한 펀드판매가 구조가 형성돼 있고, 운용사가 판매 기능까지 갖추려면 수익보다 투자비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직판은 당장 활성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23일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펀드는 사고파는 것이 아니고 노후준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직판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리 대표는 에너지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판매사와 마찰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모든 판매를 직판하지는 않는다"며 "장기투자 성격의 메리츠시니어·샐러리·주니어펀드 3개만 직판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메리츠운용은 직판을 통해 판매수수료는 기존 판매사의 10분의 1수준인 0.1%로 정했고, 운용보수도 1% 미만으로 낮췄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직접판매를 등록한 운용사는 미래에셋·삼성·신영자산운용 등 총 47곳이지만 이들 대부분은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다. 일반 고객에게 펀드를 직판하는 곳은 메리츠운용과 에셋플러스자산운용 두 곳뿐이다. 구조상 지점이 없는 운용사는 판매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감원 자산운용국 관계자는 "판매사를 거치지 않고 직판하면 수수료가 더 싸기 때문에 투자자에게 훨씬 유리한 게 사실"이라며 "다만 운용사는 판매망을 확보해야 하고, 직판을 하면 판매사 눈 밖에 날 수 있기 때문에 직판이 확산되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판매사와 운용사 모두 이해관계가 있다 보니 금융당국이 쉽게 직판을 독려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자산운용사들은 펀드 직판이 업계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실익이 있을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운용사가 판매 기능을 갖추려면 상담인력 등 별도의 조직과 관련 시스템 등을 구축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더욱이 은행과 증권사 등 판매 계열사를 보유한 대형 운용사는 직판을 시도할 이유가 더 적다고 설명한다.
한 대형자산운용사 마케팅 본부장은 "직판을 하기 위한 투자비용 대비 수익이 나올 수 있는지 문제"라며 "특히 투자자에게 제대로 된 판매를 하려면 상담 인력은 당사 상품 외에도 비슷한 상품을 모두 이해해야 하고, 투자 시점 등을 설명할 수 있는 고급 인력이어야 하며, 운용사가 일일이 고객 응대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펀드 선택은 단순 비용보다는 성과와 신뢰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된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운용사에게 직판은 물론 좋지만, 펀드 자체가 보수민감도가 높은 상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보다는 성과와 운용사과 투자자 간 신뢰가 더 중요하다"며 "펀드슈퍼마켓 등 온라인 채널을 활성화하려고 하지만 잘 안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접근성만 높다고 펀드 투자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장기투자 성격의 상품은 직판이 유용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 ‘100년 펀드’를 철학을 내세우는 에셋플러스운용은 2008년부터 직판을 이어오고 있다. 직판은 운용사의 철학과 펀드의 성격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고, 고객 역시 운용사를 믿고 투자한다는 설명이다.
에셋플러스자산운용 관계자는 "고객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직판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고객이 명확하게 상품을 인지하고 가입하니까 충성도가 높고 운용성과에 부침이 있어도 장기투자를 이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