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현대자동차그룹) |
[에너지경제신문=여헌우 기자] 현대자동차그룹 주식을 10억 달러(약 1조 696억 원) 보유하고 있다며 ‘선전포고’를 했던 미국계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회사 경영진과 만나며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다. 아직까지는 주주 권익 향상 등을 요구하며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돈이 되면 뭐든 하는’ 행동주의 펀드의 특성상 향후 어떤 전략을 구사할지 예측이 힘든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이 내놓는 후속조치에 따라 ‘공격 모드’로 자세를 바꿀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최근 유럽·아시아 지역에서 개최한 해외 기업설명회(IR) 일정 중 엘리엇 관계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엘리엇 측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 자체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주주 권익 향상을 위한 추가조치가 필요하다"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으로 배당 확대, 비핵심 자산 활용 제고, 투명한 지배구조 개편 등 세 가지 요구안을 제시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엘리엇 계열의 투자 자문사인 엘리엇 어드바이저스 홍콩은 지난 4일 보도자료를 통해 "현대차그룹의 주요 주주로 현대차그룹이 개선되고 지속 가능한 기업 구조를 향한 첫발을 내디딘 점을 환영한다"며 "출자구조 개편안은 고무적이나 회사와 주주를 포함한 이해 관계자를 위한 추가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었다.
사실상 엘리엇 측이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합병 반대’ 등 공격적인 전략은 배제했다는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18∼19일 국내와 아시아, 유럽, 미주 등에서 지배구조 개편 관련 2차 IR을 진행한다.
시장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는 분석이다. 엘리엇과 현대차그룹간 회동 소식이 전해진 17일 현대차그룹 주는 대체로 좋은 흐름을 이어갔다. 이날 현대차가 4500원(2.94%) 오른 15만 7500원, 기아차가 100원(0.32%) 상승한 3만 1450원, 현대모비스는 3000원(1.22%) 뛴 24만 8500원에 장을 마쳤다. 현대글로비스는 18만 8000원에 마감하며 전일 대비 주가가 6.52%(1만 1500원) 올랐다.
오히려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간 분할합병 이슈에 묻혔던 현대차 등이 주요 투자처로 재평가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엘리엇이 보유한 현대모비스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어 합병 반대를 통해 얻는 실익은 적어 보인다"며 "분할합병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고, 현대차 비중이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진단했다.
다만 앞으로 엘리엇의 태도를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지금까지의 행동이 장기전을 위한 포석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기업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행동주의 펀드’라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반대표를 던지며 주목받았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삼성과 달리 노조와 소액주주의 입지가 커 행동주의 펀드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며 사외이사 선임 권한 등을 언급할 확률이 있다는 분석이다.
엘리엇은 다른 기업들을 공격할 때 경영진 교체, 자회사 매각 등 과격한 요구를 주로 해왔다. 현대모비스가 들고 있는 현대건설 지분 등 비핵심 지분을 처리하라는 발언도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엘리엇이 기아차 주식을 보유한 만큼 현대모비스 지분을 정리하는 와중에 노선을 변경할 수도 있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을 앞두고 말을 바꿀 여지도 있다는 평가다. 양사는 다음달 29일 각각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이번 안에 대한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현대모비스의 인적 분할이 주총에서 통과되려면 ‘의결권 있는 출석주주 3분의 2 이상 동의와 발행주식 총수 3분의 1 이상 참석, 동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현재 현대모비스 지분 중 오너 측 우호지분은 30% 가량인 것으로 추산된다. 외국인 지분율은 48%에 이른다.
일각에서는 외환·금융위기 이후 고착된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무작정 외자유치를 위해 발벗고 나서기 보다는 차등의결권 부여 등을 통해 경영권 방어 수단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