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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철강 관세폭탄, 전세계 무역체제 흔들 것"…국내 영향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8.02.19 15:4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P/연합)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산 철강제품에 대해 고율의 관세폭탄을 안길 경우, 전 세계 무역 체제 전반을 뒤흔드는 막대한 파급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중국 뿐 아니라 한국과 캐나다, 멕시코 등 미국의 동맹국들과도 무역전쟁을 벌이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CNN머니는 18일 미국 상무부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건의한 3가지 규제안이 세계 최대의 철강 수출국인 중국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것이지만 그 밖의 철강 수출국들에도 영향이 미친다면 파장은 글로벌 무역 시스템으로 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주창하고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본격적인 통상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는 우려를 제기한 것이다.


◇ "中 겨냥했지만 중국산 점유율 미미"…한국 등 동맹국 반발 우려 목소리도

앞서 16일 미 상무부는 철강 수입 규제 방안을 담은 ‘무역확장법 232조 관련 보고서’를 백악관에 제출했다. 미 상무부는 이 보고서를 통해 △모든 국가에 일률적으로 24%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 △브라질·중국·코스타리카·이집트·인도·말레이시아·한국·러시아·남아공·태국·터키·베트남 등 12개 국가에 53%의 관세를 적용하는 방안, △국가별 대미 수출액을 2017년의 63%로 제한하는 방안 등 세 가지를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4월 11일 까지 이중 한 가지를 선택하거나 이들의 조합, 혹은 이와는 별개의 다른 제재 조처를 내놓을 예정이다.

무역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이런 제재 조처들은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과 배치되는 내용이라고 보고 있다.

뉴욕 소재 포드햄대학의 국제무역법 전문가인 맷 골드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가 WTO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규제 조처들을 강행할 경우 다른 나라들도 이에 맞대응하는 보복 조처들을 내놓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만일 미국이 세계 무역 규정을 크게 위반한다면 이는 세계 무역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에 가장 많은 철강을 수출하는 나라는 캐나다다. 지난해 12월 미 상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수입하는 전체 철강 중 16%가 캐나다산이다. 브라질과 한국이 각각 13%와 10%로 대미철강수출 2위와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어 멕시코와 러시아가 모두 9%씩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백악관이 만일 모든 철강 수입품에 대해 일괄적으로 24%의 관세를 부과할 경우에도 전 세계 철강업계에 큰 충격을 안길 것으로 CNN머니는 전망했다.

무역 전문가들은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방안을 택할 경우 중국 뿐 아니라 캐나다와 한국, 멕시코 등 미국의 동맹국들도 미국을 상대로 한 무역보복에 나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이 수입하고 있는 미국산 농산물을 대상으로 고율의 보복 관세를 매기거나 미국산 제품을 구매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처럼 강력한 철강 규제에 나선 이유는 미국의 국내 철강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다. 앞서 지난해 4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철강 업체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무부에 철강제품 수입 제한의 필요성 여부를 조사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철강 생산 유지는 우리 국가 안보와 산업 기반 보호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철강은 우리 경제와 국방 모두에 중요하다. 다른 나라에 의존해선 안 되는 영역이다. 덤핑이 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 노동자 보호는 내가 지금 대통령으로서 앉아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제까지 무역과 관련된 트럼프 대통령의 레토릭(수사법)은 주로 중국을 겨냥한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주자시절부터 중국이 값싼 철강을 세계시장에 덤핑으로 쏟아내고 있다고 비난했었다.

트럼프는 지난 2016년 4월 피츠버그에서 가진 대선 캠페인 연설에서 "중국이 미국에 철강을 덤핑으로 수출하고 있다. 이것이 당신들을 죽이고 있다. 우리의 물건 값이 조금 싸질 수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우리는 모든 일자리를 잃고 있다"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철강 수출국인 중국은 실제로 세계 시장에서 철강 과잉 공급과 이에 따른 가격 저하를 유발시키고 있다. 미국과 유럽국가들은 이와 관련한 불만을 중국 측에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그러나 중국은 대미철강 수출 10대국에도 들지 못하고 있는 나라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의 지속적인 벌금 부과로 인해 철강 수출 물량을 점점 줄여왔다.

중국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왕허쥔(王賀軍) 중국 상무부 무역구제조사국장은 17일 담화를 통해 미국 상무부의 무역확장법 232조 관련 보고서에 따른 미국 정부의 조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그런 결론에는 전혀 근거가 없으며 완전히 사실에 반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미국이 이미 대다수 중국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들을 상대로 100건에 달하는 반덤핑관세와 반보조금 쌍계관세를 부과하는 등 자국 제품에 대한 과중한 보호 조치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국내 철강업계 대응책은? "WTO 제소할 길 없어…업체별 대응책 수립"

한편, 국내 철강업계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확장법 232조를 어떻게 적용할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업계는 미국 정부가 어떤 조치를 내릴 지 여부에 따라 피해 규모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시나리오별로 여러가지 영향을 분석하는 한편 정부와 함께 대응책 마련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19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수입 철강에 대한 제재 권고안을 모두 3가지로 제시했다. 1안의 경우 모든 국가에서 수입하는 철강에 대해 일률적으로 24%의 관세율을 추가로 부과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2안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12개국에서 들여오는 철강제품에 53%의 관세율를 부과하는 방안, 3안은 모든 철강 제품에 대해 수입량 제한(수입할당제)을 적용해 2017년 물량의 63% 수준으로 규제하는 안을 제시했다.

철강업계에서는 미국 상무부가 제시한 제재 권고안 1~3안 중 어떤 안이 채택되더라도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중이다.

가령 1안이 채택될 경우 국내 철강기업중 넥스틸의 유정용 강관은 기존 46%의 관세에 추가로 24%의 관세가 더 붙게 된다. 70%의 관세가 붙을 경우 사실상 수출이 어렵게 될 수 있다.

세아제강의 유정용 강관은 지난해 6.6%의 관세가 붙었지만 1안이 채택될 경우 30%의 관세를 물어야 하고 2안을 적용하면 60%에 가까운 관세를 물어야 한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 대기업의 경우 미국 수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2안이 채택될 경우 관세폭탄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일단 철강업계는 미국이 어떤 결론을 내릴 지 지켜본 뒤 대응책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또 4월11일까지 한 달이 넘는 기간이 남아있는 만큼 정부와 함께 미국 정부 설득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미국 측에서 제시한 제재 권고안 중 2안은 예상했던 것보다 제재 수위가 높고 3안은 수출길이 막히는 것은 아니지만 수출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1안의 경우 각 기업별로 수지타산을 계산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일 지 여부에 따라 손익계산이 달라지는 만큼 현재로서는 대응방안에 대한 언급을 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다른 관계자는 "세아제강과 넥스틸은 미국쪽에 수출 물량이 많아서 어떤 결정이 내려지 든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상황"이라며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이 232조를 적용한다고 해서 WTO에 제소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정부 쪽에서는 최대한 대화를 통해 접근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좋은 결과가 도출될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반면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미국에서 국내 철강업계에 대한 제재방안을 강화하더라도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미국의 철강제품 수입에 대한 보호무역 강화는 부정적이라면서도, 국내 대형철강사는 그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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