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 20일(토)
에너지경제 포토

이종무 기자

jmlee@ekn.kr

이종무 기자기자 기사모음




[북방경제협력ㅣ9-브릿지 ②] '전기와 동북아 슈퍼그리드'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8.02.08 07:36

확고한 정책적 의지·해저 통과
북유럽 슈퍼그리드, 韓-中과 구조 닮아
슈퍼그리드의 필수 기술 HVDC
북유럽 기술, 이미 실제 적용돼 우리에 필요

▲브릿네드(Brit Ned) 개념도. (그래픽=에너지경제신문DB)


[에너지경제신문=이종무 기자]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슈퍼그리드는 ‘북유럽 슈퍼그리드’와 ‘남유럽 슈퍼그리드’, ‘아프리카 슈퍼그리드’ 등 3개다. 하지만 북유럽그리드 외에는 주춤거린다. 7일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남유럽 슈퍼그리드는 2003년 첫 제안 후 사업 주체인 참여 국가들의 주도권 갈등으로 13년 만인 2016년 겨우 1차 사업이 완료됐다. 처음 20개였던 참여 기관도 현재는 3곳으로 줄었다. ‘그랜드 잉가’라고도 불리는 아프리카 슈퍼그리드 역시 첫 삽을 뜨기도 전에 답보 상태다. 콩고 정부의 국책사업으로 추진되면서 투명성이 부족해 재원 조달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북유럽 그리드는 남유럽·아프리카 그리드와 달리 11개 정부의 확고한 의지 아래 구현되고 있다. 2009년 12월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독일 등 북해 연안 10개국의 10개 관련 기업이 슈퍼그리드 구축에 합의한 뒤 현재는 16개 기업으로 늘어났다. 2016년 6월엔 ‘북해지역 에너지 협력을 위한 정책 선언’을 채택, 사업 추진을 위한 참여 국가와 유럽연합(EU)의 지원과 의지를 재확인했다.

북방경제협력위원회(북방위, 위원장 송영길) 유럽 방문단이 지난달 네덜란드의 전력·에너지 중심 종합 컨설팅 업체인 ‘DVN GL’, 국영 전력회사 ‘테네트’ 등 북유럽 국가들을 집중 방문한 것은 이들 나라에 전력 통합의 정치·기술적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국지적이지만 국가 간 전력망 연결 경험은 1915년으로 올라가며, 2008년부터는 영국~네덜란드, 영국~노르웨이, 네덜란드~노르웨이 등 바다를 건너 장거리 전력망이 연결됐다. 특히 같은 해 연결된 네덜란드∼노르웨이 전력망은 현재 북유럽 슈퍼그리드 중 가장 긴 583㎞로 해저를 경유한다.

한국에서 우선 추진될 가능성이 있는 중국과의 연결망도 서해를 건너며, 길이도 네덜란드~노르웨이보다 훨씬 긴 1200㎞에 달한다. 따라서 북유럽의 경험은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에 ‘실질적 지혜’를 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슈퍼그리드의 핵심 기술인 초고압직류송전(HVDC) 방식이다. HVDC는 발전소에서 생산된 교류(AC)를 고압 직류(DC)로 전환했다가 전기를 받은 지역에서 다시 교류로 전환, 소비자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지중케이블의 교류 전송 한계거리가 20km인데 국가간 송전에는 연안과 해저 모두에 지중화가 필요해 HVDC 기술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직류는 거리에 제한 없이 시공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직류는 교류와 달리 전자계를 발생시키지 않아 전자파 영향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도 있다. 나아가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교류 송전 방식에 비해 HVDC가 전력 손실도 크게 줄일 수 있어 장거리 송전과 해저 케이블 송전 측면에서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전선이 하나만 끊겨도 일대가 정전되는 교류 송전과 달리 직류 전송은 대규모 정전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엔 HVDC 기술이 없다. 한국전력공사가 북방위 유럽 방문단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은 2011년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의 ‘GE’와 기술이전을 전제로 ‘HVDC JV’를 설립, 자체 기술개발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도 미국의 기술에만 의존할 수 없는 만큼 유럽의 경험은 다양하게 참고될 것이다.

유럽의 경험은 ‘갈등의 정치적 해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우선 신규 송전설비 증설 과정에서 환경 유해성 논란이 불거질 것이 분명하다. 여론 수렴을 잘못하면 밀양 송전탑 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정부의 정치적 의지가 관계없이 사업은 어려워진다. 남유럽에서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연계선로 건설 과정에서 여론수렴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15년 동안 지연됐었다. 그러나 북유럽에서는 그리드 추진 배경과 목표를 제시했고 국민에게도 충분히 설명했다. 이런 경험은 중국보다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가장 중요하게는 국가간 갈등 극복 경험이다. 전력은 안보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중국과의 연결이 가시화 되면 당장 ‘안보 문제’ 가 등장할 것이다. 중국이 전력을 무기로 흔들 가능성이 문제인데 지난 사드 사태 때 보인 중국의 행태로 미루어 이를 배제할 수 없다. 유럽의 경우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통해 유럽 통합에 대한 ‘의지’가 확인됐지만 네덜란드와 영국의 망 연결을 위한 협상은 6년 이상 걸렸다.

정치·경제적으로 ‘견제와 균형’이 안배된 전력망 건설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동북아의 정치적 환경에 북유럽의 경험을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지만 ‘정치적 통합과 전력 통합’에 대한 북유럽의 경험은 그리드를 넘어 동북아 정치 통합에도 지혜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