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너지경제신문) |
[에너지경제신문=여헌우 기자] 문재인 정부가 ‘재벌 개혁’을 요구하며 대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현대자동차그룹이 이르면 이달 중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한 작업에 시동을 걸 것이라는 관측이 나와 주목된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새해 첫 간담회 상대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을 만난다. 김 부총리와 정 부회장은 17일 경기도 기흥에 있는 현대차 환경기술연구소에서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
회사의 경쟁력과 미래차 시장에 대한 얘기가 오갈 예정이지만 재계에서는 현대차그룹과 정부 관계자간 접촉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하는 정부의 압박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지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앞서 ‘최소한의 움직임’을 요구하며 그 기한을 지난 달로 못박았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올 3월을 ‘2차 데드라인’으로 설정했다. 김 위원장은 취임 직후 "순환출자가 지배권 승계에 영향을 미치는 기업은 사실상 현대차그룹이 유일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지난 10일 신년사를 통해 "총수 일가의 편법적 지배력 확장을 억제하겠다"고 발언했다. 롯데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등이 순환출자 완전 해소를 위한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도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현대차그룹이 결단을 내릴 시점이 임박했다는 분석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당장 해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 변화의 조짐을 요구하고 있다"며 "오는 25~26일 현대차, 기아차 등 주력사의 실적 발표가 예정돼 있다는 점에서 그룹이 이달 중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고 전망했다.
현대차가 임단협을 둘러싼 노사 갈등을 어느 정도 해결했다는 점도 이 같은 의견에 힘을 보탠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 15일 2017년 임단협 교섭을 최종 타결했다.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신경 쓸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는 뜻이다.
현대차그룹의 가장 큰 고민은 순환출자 고리를 끊을 ‘묘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들의 순환출자는 크게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로 구성됐다. 현대모비스가 현대차 지분 20.78%를, 현대차가 다시 기아차 지분 33.88%를, 기아차가 또 현대모비스 지분 16.88%를 보유하고 있다.
총수 일가 등이 특정 지분을 매입해버리면 해결되지만 3조~5조 원 가량의 천문학적인 금액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지배구조 개편과 함께 정 부회장의 승계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 부회장은 현재 현대차 2.28%, 기아차 1.74%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결론적으로 이들이 지주사를 세우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점치고 있다. 지난해 초 골드만삭스가 ‘현대차 지주사설’을 골자로 보고서를 발간한 이후 힘을 얻고 있는 시나리오다. 골드만삭스는 현대차의 현금 여력이 많고 브랜드 저작권을 지녔다는 점 등을 들어 현대차가 지주사가 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었다.
다만 이 역시 비용 부담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가 각각 인적 분할 및 투자사간 합병을 통해 새로운 지주사를 설립할 것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는 이유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말 보고서를 통해 "3사 인적분할 및 투자회사 합병이 가장 합리적"이라며 "비용 최소화와 지주사 지분율 상승, 안정적인 지배권 확보 등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정 부회장 승계 문제가 걸려있다는 점에서 현대글로비스도 일정 수준 역할을 부여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의 최대 주주(23.29%)다.
앞서 증권가에서는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합병설 등 소문이 돌기도 했다. 3사 합병 후 세워진 지주사에 현대글로비스가 출자 등을 시도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다만 주주들을 설득하는 작업 등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 한 관계자는 "그룹 내부에서도 순환출자 해소 등을 위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상황이 복잡한 만큼 정부가 무작정 압박을 한다고 해결책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