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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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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에너지] 막 내리는 석탄시대…"신재생과 경쟁서 못 이긴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7.12.26 08:03

▲인도네시아 자르칸드 주 동부 단바드 시에 위치한 노천탄광에서 굴착기로 석탄을 채굴하고 있다. (사진=AFP/연합)



불과 7년 전만 해도 석탄을 싣기 위해 밀려드는 대형 선박들로 초만원을 이뤘던 호주의 뉴캐슬항은 이제 적막감만 감돌고 있다. 최대 석탄수출국 호주는 원자재 시장 침체와 함께 극심한 경제난을 겪었고, 국제사회의 탈화석연료 흐름에 따라 2040년엔 석탄화력발전이 아예 사라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물론 반론도 제기된다. 올들어 40% 가까이 폭등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석탄 산업에 친화적인 정책을 펴면서 트럼프의 선거 구호 ‘TRUMP DIGS COAL(트럼프가 석탄을 캔다)’대로 석탄산업이 다시 부흥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그러나 가격 반등은 중국의 공급제한 정책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고 석탄 산업 보호도 트럼프 정부의 정치적 수사일 뿐이라며, 장기적으로 석탄산업은 되살아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실제 지난 8월 미국 최대 민간 석탄업체인 머레이에너지의 로버트 머레이 최고경영자(CEO)는 석탄 연료 발전소가 폐쇄되는 것을 막기 위해 비상 명령을 내려달라고 백악관에 청원하면서 "우리의 시대는 끝났다"고 토로한 바 있다.

다음은 이같은 시각에 힘을 더하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세계 최대 석탄 수출항구인 호주 뉴캐슬은 거래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석탄 비중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세계 최대 석탄회사인 BHP 빌리톤(BHP Billiton Ltd.)은 세계석탄협회와 미국 상공회의소를 탈퇴하는 것으로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두 기관의 석탄 친화적인 입장 때문에 기후변화와 에너지 정책을 놓고 입장을 조정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호주 최대 은행인 NAB(National Australia Bank Ltd.) 신규 석탄 프로젝트에 대한 대출을 중단하고, 글로벌 금융회사 ING 그룹(ING Groep NV)은 2025년까지 자사 포트폴리오에서 석탄발전회사를 제로에 가깝게 줄이겠다고 밝혔다.

-중국 초상은행(China Merchants Bank Co Ltd.)은 인도 최대 에너지 기업인 아다니그룹의 주력사 아다니 엔터프라이즈(Adani Enterprises Ltd.)의 카마이클(Carmichael) 광산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대출을 중단하기로 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사업이지만, 석탄에 대한 리스크 때문에 장기적으로 수익성을 내기 힘들 것으로 평가한 것이다.

-세계 최대 석탄 수입국인 한국은 에너지전환정책에 따라, 지난 7월 탈석탄 시대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30년까지 석탄사용량을 줄이고, 2079년 석탄화력발전을 완전히 중단한다는 방침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2년까지 석탄의 수요곡선이 평평한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하면서, 최근 몇 년 간의 석탄 수요 전망이 과장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탈석탄으로 향하는 국제사회의 흐름에 데이비드 피클링 블룸버그 개드플라이 칼럼니스트는 "일부 투자자들은 세계 석탄 산업이 점차 시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완전히 찢기고 죽어가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강조했다.


◇ 태양광 vs 석탄, 바닥으로 달려가는 경주


태양광의 발전단가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는 사이, 석탄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다.

지난 주 호주 뉴캐슬항 연료탄 내년 1월 인도분 선물 가격은 메트릭톤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6월 초 대비 39% 폭등한 수준으로, 100달러를 넘어선 것은 1년만에 처음이다.

석탄에 대한 완전히 비극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지난 2년 간 석탄은 2010년∼2012년 성수기 이후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이는 단기적으로 세계 최대 석탄 발전기업인 피바디 에너지(Peabody Energy Corp.)와 세계 최대 광산기업 글렌코어(Glencore Plc)와 같이 석탄을 채굴해 수익을 내는 광산기업들에 호재로 작용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석탄산업에 종말을 고하는 결정타(another nail in the coal‘s coffin)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피클링 칼럼니스트는 "하나의 사업이 계속해서 비용이 오르고 있는 가운데, 경쟁업계가 지속적으로 비용이 하락하고 있을 때 전자에 투자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라고 말했다. 실제 뉴캐슬항의 석탄 가격은 2011년 초 대비 25% 가량 떨어진 반면, 같은 기간 태양광 모듈 가격은 80% 가까이 폭락했다.

라자드자산운용이 분석한 최근 에너지원별 균등화발전단가(LCOE)에 따르면, 가장 비싼 유틸리티 규모의 풍력·태양광의 발전단가가 가장 저렴한 석탄 발전소보다 저렴한 것으로 조사됐다. LCOE는 신규 프로젝트 착수 시점부터 전력을 생산할 때까지의 총 비용으로, 발전시설의 초기투자비용, 유지운영비 및 이자비용 등의 현재가치를 총 발전량의 현재가치로 나눠 값을 정한다.

◇ 석탄 비용은 그대론데…LNG·태양광·풍력은 ‘뚝뚝’

이제 신규 건설되는 석탄화력발전소는 재생에너지 발전원 중 가장 비싼 풍력과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수준에 이르렀다.

피클링 칼럼니스트는 "이는 더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태양광 모듈과 풍력 터빈은 제조공정을 거치는 하나의 상품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급망의 효율성을 개선하면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하락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석탄을 채굴하고 발전소를 짓는 일은 효율성이 개선되는 속도가 훨씬 느리다. 화석연료는 영원히 이길 수 없는 경쟁에 뛰어든 셈이다.

이는 세계 주요 은행들이 석탄광산업체와 발전기업에 대한 대출을 중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지구를 생각하는 높은 윤리의식이 아니다. 석탄 기술에 지원하는 것이 수익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 CDP한국위원회(사무국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는 ‘전환의 시대, 그 문을 열다’라는 제목의 ‘CDP 기후변화 한국보고서’(CDP Korea Climate Change Report 2017)에 따르면, 파리협정을 기점으로 기후변화 리스크를 주류 금융에 제도적으로 확산·정착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국제적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주요 개발은행들도 대출자산에 대한 온실가스배출량 산정과 기후변화 리스크 평가를 도입하거나 계획하고 있으며, S&P 등 금융기관의 신용도 평가에 기후변화 정책 여부를 반영하는 민간 신용평가사들도 증가하는 추세다.

세계은행(WB) 역시 지난 12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기후변화정상회의 연설에서 2년 내에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 사업의 재정적 지원 중단을 발표했다.

피클링 칼럼니스트는 "금융업계는 1900년대 초 자동차 산업이 막 부상하기 시작했을 때 2륜 마차 사업에 투자했다가 도미노 파산에 처한 바 있다. 선조의 사례에서 교휸을 얻은 은행은 인류를 위한다는 이타심 때문이 아니라 이미 죽어가고 있는 산업에 대한 투자를 꺼리고 있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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