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이사회가 월성 1호기 조기폐쇄를 놓고 진퇴양란에 빠져 있다. 정부는 조기 폐쇄 결정을 요구하고 있으니 이 경우 배임 소송 등 골치 아픈 일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은 월성 1호기 전경. (사진=연합) |
[에너지경제신문 천근영 기자] 탈원전 문제로 한수원 이사회의 고민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위로는 정부의 탈원전 압박, 아래로는 노조와 원자력계의 반발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발등의 불은 월성 원전 1호기 문제다. 정부는 한수원 이사회가 조기 폐쇄를 결정해 줄 것을 암묵적으로 요구하고 있으나 그랬다가는 모든 책임이 이사회에 씌워져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질 것이 불 보듯 뻔해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월성 1호기는 1982년 11월 발전을 시작한 국내 최초 가압중수로형 원전이다. 당초 설계 수명(30년)에 따라 2012년 11월 허가 기간이 끝났으나 한국수력원자력이 계속 운전을 신청했다. 3년간 논란 끝에 2015년 2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재가동을 승인, 2022년까지 수명을 연장한 상태다.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려면 원안위가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거나 한수원 이사회에서 중단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원안위는 2년 전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내린 판단을 스스로 뒤집어야 하기 때문에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원자력계의 판단이다. 더구나 원안위는 원자력 안전을 독립적으로 담당하는 위원회라 정부가 원안위를 통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밀어붙인다면 독립성 침해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한수원 이사회가 이 짐을 떠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원자력계의 관측이다. 한수원 이사회는 현재 13명으로 이뤄져 있다. 한수원 사장과 본부장 등 상임이사 6명과 교수와 기업인 등 외부 인사인 비상임 이사 7명이다. 비상임 이사 1명만 설득하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은 쉽게 이뤄질 수 있는 구조다. 만약 현 비상임 이사들이 반대하더라도 대부분 내년 9월 이전에 임기가 끝나기 때문에 그 뒤 정부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자리를 채운다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물론,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도 가능하다. 문제는 한수원 노조나 원자력계와 관련 단체에서 이사회를 상대로 배임 소송을 낼 것이 충분히 예견된다. 이 경우 한수원 이사회의 대응책이 사실상 없다. 이를 의식한 듯 한수원 이사회는 16일 이사회에서 "월성 원전 1호기의 폐쇄 시기를 확정하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 한수원 이사회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이행하려면 조기 폐쇄가 불가피하지만, 폐쇄 시기를 확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수원 한 상임이사는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에너지전환 로드맵 이행을 위해서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가 불가피하나 원자력안전위원회 승인이 필요하므로 정확한 폐쇄 시기를 확정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또 이 관계자는 "신한울 3·4호, 천지 1·2호와 아직 이름을 정하지 않은 2개 호기 등 신규 원전 6기에 대해서는 한수원 이사회가 백지화에 간여할 수 없고, 정부 계획에 따르는 것이 순리"라고 했다. 결국 한수원 이사회는 고리 2·3·4호, 한빛 1·2호, 월성 2·3·4호, 한울 1·2호 등 8차 수급계획 기간인 2031년까지 설계수명이 만료하는 노후 원전 10기에 대한 보고만 받았을 뿐 월성 1호를 조기에 폐쇄하겠다거나 신규 원전 건설을 취소하겠다는 등 향후 원전 계획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이동일 에너지법 전문 변호사는 "원전사업자인 한수원이 안전 등 별다른 이유 없이 원전을 조기 폐쇄를 확정하거나 신규 원전 건설을 백지화할 경우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크고, 이럴 경우 모든 책임이 이사진에게 귀결된다"면서도 "산업부 역시 조기 폐쇄를 지시하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해 신규 원전전 건설은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제외시키고, 월성 1호기는 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