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 연기 발표 다음날인 16일 오전 강원 춘천시립도서관에서 고3 수험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사진=연합) |
경북 포항에서 15일 일어난 강진으로 수능이 일주일 미뤄진 16일, 서울시내 대입 학원가는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애초 학원은 한 반에 6명씩 총 30명만 신청받는다고 공지했지만, 수험생 수백 명이 동시에 몰리면서 2시간 만에 마감됐다. 학원 관계자는 "강의를 더 열어달라는 학부모들의 요구가 빗발쳐 강사를 충원해서라도 학생들을 더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수능이 일주일 연기되면서 대치동 학원가가 ‘반짝 특수’를 누리고 있다. 반면 대규모 입시 설명회를 계획했던 종로학원 등 대형 학원들은 일정을 미루면서 대관을 하지 못해 난감해하고 있다. 일부 수험생은 시험 준비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해 버렸던 책들을 다시 주워 오고, 문제집을 새로 사기도 하는 등 수능 대비에 나섰다.
일부 학원은 1주일간 강의와 모의고사를 무료로 제공하기도 했고, 학생들의 불안을 잠재우고자 심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도 있었다.
◇ "내 문제집 어디?"...학원가 버린 책 ‘발굴’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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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8시20분께 서울 중구의 한 재수종합반 학원 6층 옥상에는 책 수백 권이 쌓인 가운데 학생 10여명이 전날 버린 책을 도로 찾느라 분주했다.
일부 학생은 옥상에 올라오자마자 책으로 바다를 이룬 모습을 보고 황당한 듯 친구에게 ‘헤엄쳐서 찾아야겠다’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자신이 봤던 책을 찾기가 쉽지 않은 듯 한 권도 찾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10권 가까이 찾아내 돌아가는 학생도 있었다. 쓰레기봉투 속에담겨 묶인 책을 보며 ‘저기 내 책이 있을 것 같다’며 아쉬워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러나 당장의 중압감에서 잠시 벗어났기 때문인지 책을 찾는 학생들은 대부분 밝은 표정으로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분위기였다.
이처럼 학원 옥상에 버린 책이 쌓인 것은 전날 학원이 ‘버릴 책이면 청소하시는 분들 편하게 옥상에 버리라’고 안내했기 때문이다.
일부 학생들은 학원 주변 흡연장에서 어두운 표정으로 ‘내가 여기를 또 오다니’라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옥상에서 책을 찾고 있던 최광원(20)씨는 "개념정리를 해둔 문제집을 찾고 있는데 잘 안 보인다"며 "수능이 연기돼 당황스럽지만 한 주 더 개념 살펴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조모(20)씨는 "책을 다 버린 탓에 문제집 다시 사러 동네 서점에 갔더니 고등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뤘더라"며 "포항은 건물도 무너질 정도였다고 하니 잘한 일 같긴 하지만 정작 1주일 동안 공부도 잘 안 될 것 같다"고 불안해했다.
동작구 노량진의 대형학원에서도 자습실 뒤에 버려진 책 무더미에서 자신의 문제집을 찾아가는 학생들이 많았다. 다른 사람이 버린 책 가운데 정리가 잘 된 것을 찾는다며 뒤적이는 수험생도 있었다.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는 대부분 문을 닫았고, 일부 대형학원은 학생들에게 자습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1주일짜리 특강을 진행한다는 전단 등은 눈에 띄지 않았다.
불안해하는 학생들의 심리 안정을 위해 ‘마음집중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원도 있었다.
학생들은 자습실에서 혼자 공부를 하다가 학원에 남아있는 강사들에게 잘 모르는 부분을 질문하는 등 1주일 늦춰진 마무리 공부를 했다.
인근 카페에서 시간에 맞춰 언어영역 문제를 풀던 재수생 A씨는 "원래 오늘 수능을 보는 날이었으니 시간표에 따라 모의고사를 풀고 있는데 사실 집중이 잘 안 된다"며 "연기 발표를 듣기 전에는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미뤄지니 고통받는 시간이 더 늘어난 것 같아 좋은지 나쁜지 잘 모르겠다"고 멋쩍게 웃었다.
교무실 역할을 하는 학원관리실 전화통은 1분에 2∼3통씩 전화가 와 불이 날 지경이었다.
학원 학생관리과장은 "학원 강의 상당수는 이미 종강을 해 어제 출근하지 않은 선생님들이 많았고 나온 분들도 대부분 조기퇴근했다"며 "그러다 뉴스를 보고 부랴부랴 학원으로 와서 긴급회의를 하고 학생들에게 문자를 보내는 등 정신이 없었다"고 전날 저녁을 회상했다.
◇ 수능 연기에 수능 문제집도 인기…일부는 '품절' 사태
▲16일 오전 광주 북구의 한 서점이 참고서 등을 전날 모두 버리고, 1주일 동안 추가로 공부할 참고서와 모의고사 문제집을 사러 온 고 3 수험생으로 북적거리고 있다. (사진=연합) |
서점가에서 수능 관련 교재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서점들은 관련 교재를 구하려는 수험생의 문의가 쇄도하면서 급하게 출판사로부터 물량 확보에 나섰다.
16일 서점가에 따르면 교보문고에서는 전날 수능 연기 발표 직후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수능 문제집 2500여권이 판매됐다. 이는 14일 대비 2.5배, 일주일 전 같은 요일과 비교해서는 1.6배가량 늘어난 규모다.
인터넷 서점 예스24에서도 15일 하루 동안 대표적인 수능 모의고사 교재 10종의 판매량이 전날 대비 40배 늘었다. 이들 교재의 판매량은 일주일 전과 비교해서는 4배 증가했다. 서점에서는 일반적으로 수능을 2∼3일 앞둔 시점에 관련 교재의 판매가 거의 끝난다. 일부 출판사는 이미 관련 교재를 절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수능 직후 대규모 입시 설명회를 계획했던 대형 학원엔 비상이 걸렸다. 8000~1만명에 이르는 인원이 들어갈 장소를 다시 구해야 하는데, 마땅한 곳을 못 찾고 있기 때문이다. 종로학원은 당초 수능 바로 다음 날인 17일에 3000만원을 들여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1만명이 모이는 입시 설명회를 열 계획이었다. 수능 연기로 종로학원은 다시 대관해야 한다. 그러나 25일 이후 잠실학생체육관은 일정이 꽉 차있다.
◇ 여행사 ‘노쇼’에 울상…성형외과는 스케줄 조정 애먹어
졸업·가족여행 예약 취소도 잇따랐다. 하나투어에 따르면 17일부터 30일까지 고3 수험생 나이인 1999년생이 포함된 예약은 전국 500여 건에 달했다. 16일 이 예약에 대해 ‘취소할 수 있느냐’ ‘일정을 미뤄달라’는 문의가 빗발쳤다. 여행사들은 수능을 사유로 여행을 취소할 땐 위약금을 면제해주는 등 대책을 마련했다.
성형외과 예약도 수능 이후로 밀렸다. 대학 입학 전에 외모를 다듬기 위해 11월 중순에 주로 성형 수술 일정을 잡은 수험생이 많다. 한 성형외과 관계자는 "수능 연기 발표 직후 수험생 10여 명이 급하게 예약을 미뤄 수술 날짜를 조정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음식점·떡집 상인들은 이미 만든 음식과 찹쌀떡·인절미를 못 팔아 울상이다. 부산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한 식당 주인은 "수능 연기로 16일 저녁에 네 테이블이나 예약이 취소돼 손해를 봤다"고 했다.
떡집 주인들도 울상이다. 인터넷에는 ‘수능이라고 찹쌀떡·인절미 주문이 몰려 50되를 만들어놨는데 전부 취소됐다. 일주일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 논술도 연기될 듯
수능 연기의 여파는 수험생·학원가 뿐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tbs 교통방송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수능 출제위원의 감금은 일주일 연장됐지만, 각 대학의 논술위원들은 풀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교육 브로커들로 인해 논술문제의 유출 위험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수능 일정이 일주일씩 밀리면서 대입전형 일정도 변경이 불가피하게 됐다.
당초 이번 주말인 18일과 19일 이틀간 수도권 주요 대학 가운데 10여곳이 논술고사를 치를 예정이었다.
18일에는 성균관대·경희대 인문계열과 연세대(서울) 인문·사회계열, 단국대(죽전) 인문계열 등이 논술고사를 시행할 계획이었고, 이튿날에는 경희대 사회계열과 한양대(에리카) 인문상경계열, 덕성여대 인문사회계열, 동국대(서울) 인문계열 등이 시험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이들 대학은 대부분 수시모집에서 수능 등급 최저기준 요건을 적용하게 된다. 따라서 수능이 23일로 일주일 연기돼 논술 고사 일정의 연기도 불가피하다는 게 입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논술고사 외에 수능성적 통지일이 미뤄지면서 전체 수시모집 일정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크다. 원래대로라면 이달 16일 치러진 수능의 성적은 다음 달 6일 발표될 예정이었다.
각 대학은 논술·면접과 수능점수 등을 바탕으로 전형을 진행한 뒤 12월 15일까지 합격자 발표를 끝내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성적 통지일이 일주일가량 미뤄질 경우 수시 합격자 발표 마감 예정일까지 이틀밖에 시간이 남지 않아 대학들이 전형을 마치기 쉽지 않다.
논술이나 정시 원서접수·합격자 발표·입학식마저 미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