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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데이터교와 디스토피아, 헤테로토피아, 유토피아

김세원 가톨릭대학교 융복합전공 교수

에너지경제ekn@ekn.kr 2017.11.14 10:40:19

 

사본 -김세원

지난 주말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영상문화학회 추계학술대회의 주제는 ‘테크놀로지의 상상계’였다. ‘꿈들의 해독 테크놀로지’, ‘테크놀로지는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가: 데이터교 담론에 대한 종교학적 재평가’, ‘뇌과학과 의식철학’ 같은 흥미진진한 논문들이 발표돼 6시간 내내 자리를 지켰는데도 지루한줄 몰랐다.

데이터교는 유발 하라리가 최신작 ‘호모데우스’를 통해 예견한 21세기 신흥종교다. 생명과학과 컴퓨터과학의 결혼을 통해 탄생한 이 신생종교는 인간의 지식과 지혜를 믿는 대신 빅데이터와 알고리즘, 인공지능을 더 신뢰하고 숭배한다. 이 신흥종교는 인간을 단일한 데이터 처리시스템으로, 역사는 이 시스템의 효율을 높이고 마을-도시-국가-세계로 시스템을 확장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이제 이 시스템은 인간들이 자발적으로 업로드한 생각과 행동, 신체 정보를 토대로 인간보다 인간을 더 잘 아는 우주적 규모의 신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본다.

18세기 인본주의가 신(神)중심 세계관에서 인간중심 세계관으로 이동함으로써 신을 밀어냈다면 21세기 데이터교는 인본주의에서 데이터로 이동함으로써 인간을 밀어낼 것이라고 하라리는 예언했다. 사물인터넷이 우주적 규모로 확장되어 만물인터넷 시스템으로 발전하면 인간은 엔지니어에서 칩으로, 궁극적으로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데이터로 전락해 소멸될 것이라는 암울한 미래다.

데이터교가 지배하는 미래가 지극히 디스토피아적인 이유는 지금까지 인간이 다른 모든 동물에게 행하였던 일을 인간이 거꾸로 당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에서 비롯된다. 인공지능이 두려운 이유는 지적 능력 때문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자아의식을 갖고 인간을 도구화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예상의 근거는 바로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간들이 다른 동물들에게 하고 있는 행동에 있다. 지구상에는 인간보다 많은 가축들이 그들의 자연스러운 삶을 박탈당한 채 인간의 먹거리와 입을 거리, 혹은 투우, 투견, 사냥, 서커스 같은 레저의 대상으로서 사육되어 제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 우리 인간들은 그동안 높은 지적 능력을 앞세워 지적 능력이 낮은 다른 동물들을 철저히 도구화하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느낄 감정과 생명의 존엄성은 철저하게 무시했다. 우리가 다른 동물에게 했던 일들을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할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 인공지능은 인간을 닮게 만들어졌으되 지적능력은 인간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게 우리가 인공지능에 느끼는 공포의 근원이다. 우리가 다른 동물을 희생시켰듯, 우리도 희생당할까 두려운 것이다.

필자는 그 끔찍한 공포를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가서 보았던 영화 ‘혹성탈출’을 통해 생생하게 체험했다. 서기2673년 한 우주선이 발사된지 1년6개월 만에 지구에서 320광년 떨어진 오리온자리로 추축되는 행성에 불시착한다. 옥수수를 따고 있는 원시인무리를 발견한 것도 잠시, 우주선에 타고 있던 비행사 일행은 말을 타고 원시인을 사냥하는 원숭이무리에 쫓기게 된다. 인간보다 지능이 월등하게 높은 원숭이가 다스리고 인간을 닮은 원시인은 야생동물처럼 살아가는 이 행성이 미래의 지구라는 사실이 마지막 순간에 밝혀지는데 사람과 원숭이의 지위가 바뀐 세상 풍경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인간은 동물처럼 동물원에서 사육당하는가 하면 원숭이들이 취미로 즐기는 사냥의 대상이다. 실종된 비행사의 머리가 박제가 되어 원숭이 궁전에 전시되고 있는 장면에서는 더 이상 영화를 볼 수 없어 울면서 극장 밖으로 뛰쳐나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후로 채식주의자, 엄밀하게는 고기는 먹지 않지만 유제품과, 달걀, 생선은 먹는 피스코 베지테리언이 되었다.

1516년 토머스 모어는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이상향을 그린 소설을 발표하면서 그 이상향에 ‘유토피아’란 이름을 붙였다. 반면 모든 인간이 불행한 지옥향을 가리키는 ‘디스토피아’는 1868년 존 스튜어트 밀의 의회 연설에서 처음 등장했다. 한편 현실화된 유토피아를 가리키는 ‘헤테로토피아’는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유토피아와 대비되는 공간으로 제시한 개념이다. 신혼여행지, 놀이공원, 다락방 같은 헤테로토피아는 모든 문화와 사회에 존재하나 그 존재방식이나 작동방식은 다양하고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데이터교가 지배하는 미래가 유토피아 혹은 헤테로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는 결국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선택하는데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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