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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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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 '보여주기' 정규직 졸속전환 '러시'…실효성 ‘도마’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7.05.19 08:12

▲지난 2013년 6월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열린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천명하자 시중은행들이 보여주기식 정규직 졸속 전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미 은행권은 지난 2007년부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순차전환하고 있으며 현재 비정규직은 변호사나 회계사, 운용역 등 전문직 위주의 무기계약직과 창구 업무를 전담하는 텔러 등으로 나뉜다. 이들 중 전문직 위주의 무기계약직 직원들은 ‘은행이 아니어도 된다’는 입장이어서 정규직 전환에 따른 고용안정성 강화 대상 조차 제대로 설정되지 않은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NH농협·IBK기업은행이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경우 약 2조6000억원의 인건비가 더 들어갈 수밖에 없어 은행권 재정건전성만 악화시킬 것이란 지적이다. 또 정부가 최대 주주인 IBK기업은행 등에는 과도하게 국민혈세가 낭비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18일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달 지점의 80%의 폐쇄를 발표한 씨티은행이 일반사무직원과 창구직원 300명을 연내에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씨티은행은 정규직 채용 인원의 20%의 비정규직 중 시험을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기계약직 전원에 대해 시험 없이 일괄 전환키로 한 것이다. 이들은 올해 안에 모두 5급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기업은행 역시 지난해 12월 김도진 행장이 취임하면서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기 위한 테스크포스(TF)를 만들어 노사가 세부 방안을 논의, 무기계약직인 창구 담당 직원 3000명의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있다.

기업은행의 무기계약직 직원의 수는 총 3183명으로 전체 직원(1만1218명)의 30%를 차지해 은행권에서 가장 많다. 따라서 기업은행 내부에서는 텔러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더라도 기존 정규직 수준의 자격을 갖추지 않으면 정규직화 이후에 인사고과가 힘들도록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 우리·신한·KB국민·KEB하나은행 역시 계약직 창구직원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한 바 있다. 또 올해 초 농협은행은 별정직 100명을 7급으로, 육아휴직 대체직 4명을 별정직 금융업무직으로 전환해 총 104명에 대한 전환을 실시하기도 했다.

금융연구원과 각 시중은행의 경영공시에 따르면 작년 기준 은행권 비정규직의 비율은 4.8%로 다른 업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규직의 비중이 높다.

은행별로 비정규직(무기계약직 포함) 직원의 규모를 살펴보면 지난 3월말 기준 ▲신한은행 781명 ▲우리은행 769명 ▲농협은행 2979명 ▲하나은행 520명 ▲기업은행 3481명 ▲국민은행 1295명 등으로 이들 대부분은 고액 연봉을 받는 세무사, 회계사, 변호사 등 고임금 전문계약직으로 정부가 정규직화를 추진하려는 저임금 비정규직과는 거리가 멀다.

무기계약직은 정년이 보장돼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업무범위나 복지, 급여에서 차별을 받는다. 은행권에서는 주로 지점에 창구 직원(텔러)가 무기계약직으로 계약된 경우가 많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있다는 의미로 ‘중규직’이라고도 불린다.

지난 2013년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과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가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에 합의한 이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이뤄진 상황이지만 아직 일부 은행에는 비정규직이 남아있다.

임금 부분도 문제다. 금융업이 전반적으로 저성장, 저금리 기조로 인해 암울한 상황에서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지점을 폐쇄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오히려 인건비를 상승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현재 기업은행은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임금기준을 일반 대졸 직군 행원과 맞추려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까지 호봉제를 차용하면서 직원들의 총 급여가 10년전인 2008년(6657억원)과 비교하면 1조370억원으로 약 53% 가량 증가했다.

특히 무기계약직의 초임 평균 연봉은 3000만원이며 수당과 성과급을 포함한 전체 평균 연봉은 4500만원이 넘는 상황에서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함과 동시에 급여 수준도 일괄적으로 맞추게 된다면 연봉이 5000만원대를 받고 있는 일부 과장급 텔러들의 경우 연봉이 낮아질 수 있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또 순환보직형으로 이뤄진 조직 구조를 어떻게 바꾸고 공개채용을 대신해 직군별로 선발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차별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전무한 상태다.

이에 일각에서는 은행권이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생색내기용 일자리 정책을 내세우고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송수영 중앙대학교 경영경제대학 교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소득의 상승을 일으켜 소비를 증진시킨다는 차원에서 국가 내수경제에게는 큰 이득이 될 수 있다"며 "하지만 단순히 월급만 오르게 되는 것이지 업무는 동일하기 때문에 또다른 차별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아 인건비를 어떤 방식으로 마련하고 비정규직의 경력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은행의 무기계약직은 정시 출퇴근이 가능하고 실적압박이 없는 장점이 있어 정규직 전환을 피하려는 직원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더라도 승진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어 문젯거리만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고 꼬집었다.


[에너지경제신문 복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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