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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에너지전쟁 성패…"문제는 사람이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7.03.22 18:45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EE칼럼] 에너지전쟁 성패…"문제는 사람이야" 

이재승-사진1(반명함)


국제 에너지 시장은 끊임없는 전쟁터다. 에너지가 없이는 경제도, 안보도 불가능하기에 모든 국가와 기업들은 사활을 걸고 에너지 개발과 수급 정책을 마련한다. 우리처럼 해외에서 수입하는 화석연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나라에서 에너지 수급의 문제는 항시 그림자처럼 쫓아다닐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국제 에너지 시장은 변동이 심하다. 지난 10년간 원유가격의 동향을 보면 아찔한 롤러코스터를 탄 듯 급등락을 반복해 왔다.

지금은 저유가 시대에 잠시 평온함을 느끼고 있을지 몰라도 정확히 10년 전 우리는 미친 듯이 자원을 찾아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불안감과 조급함을 안고 해외 사업에 뛰어들던 주체들은 몇 년 지나지 않아 해외 자원개발의 실패라는 오명을 쓰고 자신들을 밖으로 등 떠밀던 같은 정치인들에 의해 난도질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몇 가지의 조건이 필수적으로 받쳐주어야 한다. 좋은 무기가 뒷받침돼야 하고 좋은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끊임없는 전쟁비용을 대어줄 두둑한 재원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전쟁에서는 유능한 지휘관과 장수, 그리고 용맹한 전사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전쟁의 준비가 과연 되어 있는가? 10년 전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에너지전쟁에 나갔는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하면 된다는 성실성을 믿고 지휘관들은 돌격 명령을 내렸고, 전사들은 용감하게 전장으로 나갔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은 탄약은 곧 소진됐고, 지리에도, 전술에도 익숙하지 않은 장수들과 전사들은 상대편의 매복 공격에 많은 희생을 치렀다. 게다가 시기적인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사력을 다해 확보한 해외 자산은 뒤이은 유가의 폭락으로 그대로 손실로 이어졌다. 패전의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많은 장수와 전사들은 그나마 남은 고지들을 맥없이 포기하고 무방비 상태로 돌을 맞으며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다. 아무도 이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고, 거기서 무얼 얻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국제 에너지 시장은 프로들의 세계다, 20세기 초중반부터 자원 보유국과 국제 에너지기업의 전문가들은 수십 년에 걸쳐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면서 경험과 정보를 축적해 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 경험과 정보는 에너지전쟁의 성패를 좌우하는 최우선적 요소들이다. 비정한 프로들이 벌이는 전쟁에서 그저 성실한 비전문가가 승리를 거둔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정치적 구호나 홍보가 먹혀들 가능성은 더더욱 적다.

우리의 관료조직은 최고의 성실성과 유능함을 근간으로 한다. 거의 일년마다 돌아가는 순환보직 체제 아래에서 한두 달이면 해당 부서의 업무를 완벽히 파악하고 차질없이 거대한 정부 조직을 운영하는 역량은 가히 세계 정상급이다. 뛰어난 사명감에 자기 관리도 철저하다. 그러나 이런 성실성과 학습역량이 에너지전쟁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성을 그대로 담보해 주지는 않는다.

에너지 부문에 충분히 특화된 지식과 정보, 경험이 몇 단계로 반복, 숙성돼야 비로소 피를 말리는 에너지전쟁에서 인정받는 장수와 지휘관이 될 수 있다. 석유, 가스 부문이든, 신재생 부문이든, 이런 전문성은 동일하게 요구된다. 대선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다시 여러 정부 조직의 개편을 시도하게 될 것이고, 에너지 부문 역시 또 한 번 도마 위에 올라갈 것이다. 에너지 부문을 독립시킬지, 어떤 형태로 효율성을 높일 것이지 고민할 것이다.

하지만 조직을 확대해 더 많은 예산과 승진 기회를 만드는 데에만 역량이 집중된다면 에너지전쟁의 성패는 여전히 비관적이다. 에너지 조직 개편의 핵심은 이를 이끌어 나갈 인력들의 전문성 강화에 두어져야 한다. 진정한 프로급 에너지 전문가를 키우고, 그들이 업그레이드된 에너지 조직을 끌고나가게 해야 한다. 왜 우리는 그동안의 에너지정책에 대해 자랑스러워하지 못했는지를 철저히 복기할 필요가 있다. 성공만큼 실패의 경험도 소중하다. 그 복기 과정은 시스템 정비는 물론 그 사업들을 담당했던 공공 및 민간 부문 전문인력의 관리에 있다. 성공의 신화도 실패의 경험도 고스란히 사람에 축적돼 있다. "바보야, 문제는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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