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찬 미래헌법연구원장 |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의결이 가결됐다.
특히 이번 탄핵 소추 의결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의결과는 달리 정치권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촛불로 상징되는 민의의 압력에 의한 것이다.
지극히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집회와 시위가 만들어낸 탄핵소추 의결로써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이번 사태는 사회적으로 박정희 향수에 대한 청산과 더불어 국민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초인적 지도자에 대한 환상이 청산됨으로써 진정한 공화국 시민의 의식이 성숙되는 계기가 되리라 본다.
"유능하고 청렴한 개발독재"로 상징되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는 그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에 제일 요인이었다.
그런데 박근혜정부의 몰락과 함께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 역시 상당히 퇴색되어질 수밖에 없으리라 본다.
많은 국민들, 특히 박정희 시대를 열심히 살았던 분들은 ‘이 만큼 밥 먹고 살게 된 것이 다 박정희 덕이다’라는 말을 해왔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몰락으로 이제는 가난의 극복이 지도자의 공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피땀 흘려 일한 결과이며 시대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 생각할 수밖에는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 헌법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의 구성원은 모두 인격적으로 평등하며, 사회적 지위란 각자 맡은 기능의 다름일 뿐 자신보다 더 낮은 사람도 없고 더 높은 사람도 없다는 시민적 인식을 기초로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민주공화국의 시민에게 있어 대통령이란 자기의 운명을 책임진 지도자가 아니라 단지 헌법과 법률이 규정한 기능을 담당하는 동료이며 이웃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이 민주 공화국을 살아가는 시민 의식의 전제이다.
그러나 헌법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선언에도 불구하고 정작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선량한 이웃이 아니라 지도자를 기다리는 희망이 있었다.
충성을 다 바치기만 하면 자신과 국가의 운명을 올바르게 이끌어 줄 지도자를 기다리는 마음 말이다.
어쩌면 이것이 유능하고, 청렴하며, 강력했던 박정희표 개발독재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이유였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대통령과 왕을 동일시하며 국민은 왕의 귀환을 기다리는 정서가 있었다.
국민과 국가를 풍요와 번영으로 이끌어주며 자신들을 강력하게 통치할 왕이 귀환하기를 바라는 희망 말이다.
그렇지만 이런 희망은 그저 신기루에 불과했음이 이번 박근혜 정부의 몰락으로 확인되었다.
왕은 오지 않는다.
이제 대한민국의 국민은 지도자의 돌봄을 받는 백성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공동선을 추구하여야 하는 공화국의 시민으로 살아가야 할 운명임을 확인했다.
비록 그것이 외롭고 고단한 길일지라도 말이다.
이것이 이번 탄핵소추가 우리 사회에 가져온 긍정적인 변화일 것이다.
약력
- 95년 행정고시
- 대법원 법원행정처 법정심의관실 사무관
- 이경찬(미래헌법연구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