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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민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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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차곡차곡... 우리도 풍경이 된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5.02.27 15:32

[여행]서울 걷고싶은 거리 1호 '정동'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 와요...    <이문세 ‘광화문 연가’중에서>

◇광화문 연가의 장소 ‘정동’을 가다
1999년 서울시가 ‘걷고 싶은 거리’ 1호로 지정한 정동을 찾았다. 눈내린 광화문 거리를 지나 ‘언덕 밑 정동길엔∼’ 이라는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며 정동길에 들어섰다. 겨울의 정취를 가듬 품고 있는 정동길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신기한 구석이 많다. 정동으로 떠나는 겨울 나들이, 삶에 지친 그대와 손잡고 이 길을 함께 걷고 싶다.

정동(貞洞)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조선 태조 이성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이 현재의 정동 4번지에 자리해 있었기에 예부터 정릉동이라 불렸다. 1936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정동정(貞洞町)이 됐다. 세월이 흘러 10년후인 1946년 지금의 정동으로 바뀌었다. 정동의 나이는 올해로 70살인 셈이다.

오늘날 정동은 마치 복잡한 도심 속 한갓진 섬처럼 느껴진다. 돌담과 낮은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소담한 거리 풍경이 친숙하게 다가온다.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정동이 주는 또 다른 매력이다. 정동의 인기는 앞으로도 당분간 식지 않을 듯 싶다.

◇‘광화문연가’에 등장하는 바로 그 교회당 - 정동제일교회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소담하고 정겨워 보이는 삼거리와 붉은 벽돌 건물을 만나게 된다. 1896년에 준공된 ‘정동제일교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교회 건물이다. 광화문 연가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그 교회당이기도 하다. 1977년 사적 256호로 등록된 역사적·상징적 건물이지만 겉모양은 담백하다.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건물 곳곳에 아치형 창문이 나 있다. 절제된 고딕양식을 선보이는 이곳은 본래 십자형 건물이었다. 하지만 1926년 증축하면서 양쪽 날개 부분을 확장해 지금은 약 579㎡의 네모난 모습을 갖추고 있다. 겉모양 외엔 별로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다. 가을이면 노란 단풍과 붉은 벽돌이 어우러진 장면이 멋진 풍경화로 되살아나는 것 같다. 어여쁜 풍경에 운치까지 더하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정동 일대는 구한말 조선 땅에서 가장 서구화된 땅이었다. 개화 이후 정동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 등 서구 열강의 공사관이 밀집한 ‘외교 1번지’였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로 신식학교, 개신교회 등 서양 문물이 상륙했던 정동에는 근대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세월은 가도 역사는 남는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려는 듯.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

덕수궁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과 더불어 서울 4대 궁 중 한 곳으로 학생들의 소풍지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사시사철 인기가 높은 명소다. ‘경운궁’이라 불리던 이곳은 1907년 고종황제가 왕위를 순종황제에게 물려준 뒤 머물게 되면서, 고종황제의 장수를 빈다는 의미에서 ‘덕수궁’으로 불리게 됐다.

덕수궁은 다른 조선 궁궐에선 찾아보기 힘든 묘한 매력을 지녔다. 1904년 대형화재로 인해 중화전, 석어당, 함녕전 등 궁 내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된 후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이 지어졌다. 석조전에는 조선왕조의 쇠락과 나라를 빼앗겼던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덕수궁은 조선 전통 목조 건축과 서양식 건축이 혼재돼 있는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거듭나게 됐다.

전통과 근대가 어우러진 덕수궁에서 조선말의 비통한 역사를 되새겨보는 것 역시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특히 고종이 자주 찾아 커피를 마시던 장소인 ‘정관헌’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정관헌에 자리잡고 앉아 창밖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고종이 느꼈을 법한 구한말의 애환이 조금이나마 느껴지기도 한다.

정동은 한국 커피숍의 원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친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어온 시기는 1980년 전후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공사 베베르의 처형이었던 독일 여인 손탁(Antoniette Sontag)은 고종의 각별한 신임을 얻어 현재 이화 100주년 기념관이 있는 터에 땅을 하사받았다. 1902년 그 자리에 건설한 것이 바로 손탁 호텔이다. 이곳에 커피를 파는 다방이 국내 최초로 들어섰다는 점에서 유행을 선도하는 정동의 면모가 엿보이기도 한다.

◇아관파천의 역사적 현장 - 정동공원(구 러시아 공사관)
1895년 10월 경복궁에서 명성황후가 일본 군인에 의해 살해당하는 천인공노할 일이 벌어졌다. 을미사변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1896년 2월 세자와 함께 러시아공사관으로 급히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단행했고, 결국 1년이상 러시아공사관에서 머무는 기이한 역사가 만들어졌다. 정동공원은 바로 과거의 러시아공사관 터에 자리하고 있다. 아관파천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정동공원에 스며 있는 셈이다.

1890년 러시아공사관 준공 당시만 해도 이 건물은 근처에서 가장 높은 곳에 지어져 정동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대부분 소실되고 탑만 덩그러니 남아 있던 것을 1973년 오늘날의 모습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보수공사를 거쳐 지난 1월 시민들에게 새롭게 공개됐다. 공원의 동산 위에 세워진 르네상스 풍의 3층짜리 하얀 탑은 역사의 뒤안길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하늘을 향해 우뚝 서있다. 탑은 말이 없지만 역사는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 자꾸 말을 건네는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탑이 왠지 쓸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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